바하올라의 가족은 바하이 신앙의 창시자이자 하느님의 현시자인 바하올라의 생물학적 관계입니다.
바하올라께서 자신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한 상징적 용어 중 하나는 사드라툴 문타하 Sadratu’l-Muntahá(*참조) 로, 그 너머에는 지나갈 수 없는 나무라는 뜻이며 남성 후손을 아그산이라 불렀고 그 의미는 가지이며, 여성 후손은 나뭇잎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슬람에서는 Sadratu’l-Muntahá를 아랍어 발음으로 Sidrat al-Muntaha 시드라 알 문타하
의미는 가장 먼 경계의 로트나무로 7번째 천국의 경계를 표시하는 큰 로트나무를 지칭함.
인간이나 천사조차도 넘어갈 수 없는, 인간에게 계시된 하늘의 지식의 경계를 의미하며 아랍 문화권에서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나는 로트나무는 인내와 자양분을 상징하며, 이 세상의 흙에 뿌리를 내리고 완벽을 향해 위로 뻗어 있는 가지는 연대와 결의의 상징한다.
그분의 후손들에 대해,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은 서한을 남기셨습니다.
신성한 이 『유언자』의 『유언』은 이것이니라: 아그산, 아프난 그리고 『나의 친족』은 각자 모두가 얼굴을 『최강의 가지』에게로 향해야 하느니라. 『짐』의 『지성서』에 『짐』이 계시한 다음 구절을 숙고하여라: ‘『나』의 현존(現存)의 대양이 퇴조(退潮)하고, 『내 계시의 책』이 끝나면, 너희의 얼굴을, 이 『오랜 뿌리』에서 가지 쳐 나온 『이』, 즉 하느님께서 의도하신 『이』에게로 향하여라.’ - 케타베 야드 Kitáb-i-‘Ahd
1892년 바하올라의 승천 이후, 압돌바하바하, 바히이 카눔, 미르자 미흐디를 제외한 모든 자녀들이 성약을 어겼고, 쇼기 에펜디의 사역이 끝날 때까지 쇼기 에펜디를 제외한 모든 살아있는 바하올라의 후손들은 성약을 파괴하였습니다.
바하올라의 부모와 형제
바하올라의 아버지는 미르자 보조르그 (Mírzá Buzurg)였고 어머니는 카디지 카눔(Khadíjih Khánum)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고 어머니는 보조르그와 결혼하기 전에 남편이 있었기 때문에 바하올라는 양쪽 부모에게서 이복형제가있었습니다.

바하올라의 친형제
- Sárih Khánum
- Mirza Mihdi
- Bahá’u’lláh
- Mírzá Músá
- Nisá’ Khánum
바하올라의 어머니를 통한 이복형제
- Sakínih Khánum
- Mírzá Muhammad-‘Alí
- Sughrá Khánum
바하올라의 아버지를 통한 이복형제
- Mírzá Aqa,
- Mírzá Muḥammad-Ḥasan
- Shah-Sultan Khanum
- Mírzá Taqi Parishan 쉐이키였지만 바하올라와 바하이 신앙에 반대함
- Hají Mírzá Riḍa-Quli
- Mírzá Ibrahim
- Fatimih-Sultan Khanum
- Mírzá Yaḥyá
- Husniyyih Khanum
- Mírzá Muḥammad-Quli
바하올라의 결혼
당시 관습에 따라, 바하올라는 그의 가족의 주선에 의해 그가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아시에 카눔 과 결혼했습니다 . 아시에 카눔은 당시 열다섯 살이었고, 가장 고귀한 잎(The Most Exalted Leaf)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아시에 카눔은 '압돌바하의 어머니였습니다.
바하올라의 두 번째 아내는 그의 사촌인 파티미 카눔이였습니다. 그녀는 14살 때 수십살의 나이차가 있는 몰라 무함마드 타키와 결혼을 했으나 그가 1843년 세상을 떠나 과부가 되었습니다. 1844년 바비로 개종한 사촌인 바하올라가 누르지역에 신앙을 교도하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바비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기 때문에 파티미의 어머니는 바하올라께 그녀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 주기를 거듭 요청했고 1849년 결혼하게 됩니다.
바하올라께서는 또한 순교자의 미망인이였던 가와르 카눔과 결혼하셨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알려지지 않았고, 가와르 카눔은 바하올라의 첫번째 부인인 아시에 카눔의 하녀였습니다.

바하올라의 부인과 자녀
바하올라는 3번 결혼을 하셨으며 3명의 부인으로 부터 다음과 같은 자녀를 두셨습니다.
Ásíyih Khánum, 아시에 카눔 1835년 바하올라와 결혼하였고 "나밥"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 ‘Abdu’l-Bahá 압돌바하
- Bahíyyih Khánum 바히예 카눔
- Mírzá Mihdí 미르자 메흐디
- Sádiq, 사딕 3~4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 `Alí Muhammad, 알리 무함마드 7살에 세상을 떠남
- `Alí Muhammad, 알리 무함마드 2살 때 세상을 떠남



Mahd-i-‘Ulya, (Fatimih Khanum) 마흐디 울야 1849년 결혼
- Mírzá Muhammad ‘Alí
- Sadhijiyyih Khanum, who passed in infancy.
- Mírzá Ḍíyá’u’lláh
- Mírzá Badi’u’lláh
- Samadiyyih Khanum, who married Majdu’d-Din.
Gawhar Khánum, 1860년 초반에 결혼
- Furúghiyyih Khánum
바하올라께서는 14명의 자녀를 두셨는데, 그중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7명뿐이었습니다.

압돌바하의 가족
압돌바하는 1873년 3월 8일 무니리 카눔(Munírih Khánum)과 결혼하였습니다.이 결혼으로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그 중 다섯 명은 어린 시절에 사망하였습니다: 호세인 에펜디(Ḥusayn Effendi, 1887년 2세로 사망), 미흐디(Mihdí, 2세 반에 사망), 투바(Ṭúbá), 푸아디예(Fu'ádiyyih), 그리고 루한기즈(Ruḥangíz).
성인까지 성장한 네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첫째 딸은 디아이예(Ḍiyá'iyyih, 1951년 사망)로, 1895년 미르자 하디 시라지(Mírzá Hádí Shírází, 1955년 사망)와 결혼하였으며, 그들의 자녀로는 쇼기 에펜디(Shoghi Effendi), 루한기즈(Rúḥangíz), 미흐랑기즈(Mihrangíz), 호세인(Ḥusayn), 그리고 리야드(Riyáḍ)가 있으며, 모두 라바니(Rabbání)라는 성을 사용하였습니다.
둘째 딸인 투바 카눔(Ṭúbá Khánum, 1880-1959)은 미르자 무신 아프난(Mírzá Muḥsin Afnán, 1863-1927)과 결혼하였으며, 그들의 자녀로는 루하(Rúḥá, 1899-1971), 투라야(Thurayyá), 수하일(Suhayl), 그리고 푸아드(Fu'ád, 1943년 사망)가 있으며, 모두 아프난(Afnán)이라는 성을 사용하였습니다.
셋째 딸인 루히(Rúḥí)는 미르자 잘랄(Mírzá Jalál)과 결혼하였으며, 그들의 자녀로는 마리암(Maryam), 무니브(Muníb), 자흐라(Zahrá), 그리고 하산(Ḥasan)이 있으며, 모두 셰이에드(Shahíd)라는 성을 사용하였습니다.
넷째 딸인 무나바르(Munavvar, 1971년 사망)는 미르자 아흐마드(Mírzá Aḥmad)와 결혼하였으나, 자녀는 없었습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셰이에드 알리 아프난(Sayyid 'Alí Afnán)과 푸루기예 칸움(Furúghiyyih Khánum)의 아들들이 압돌바하의 손주들과 결혼하면서, 이러한 결혼이나 부적절한 결혼, 또는 가족 내에서 성약파괴자들과의 관계를 끊지 않은 이유로, 쇼기 에펜디는 1940년대와 1950년대 초에 압돌바하의 생존한 모든 손주들(자신을 제외하고)을 성약파괴자로 선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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