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이 문헌에서 Ṣáḥib(샤헤브) 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존칭 호칭으로, 바하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게 이 호칭으로 불린 인물은 Mánikchí Ṣáḥib , 즉 Manikji Limji Hataria입니다.

Mánikchí Ṣáḥib는 누구인가?

마닉치 사헤브는 인도에서 조로아스터교 집안에 태어났으며, 유능한 외교관이자 조로아스터교의 헌신적인 신자였습니다. 1854년에 그는 카자르 왕조의 억압적인 정책으로 고통받고 있던 이란 내 조로아스터교도들을 지원하기 위해 인도 파르시 공동체의 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이 시기 이후 바그다드에서 바하올라를 직접 알현하였으며, 평생 조로아스터교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면서도 새 신앙의 가르침에 깊이 끌려 그 초기 순교자들의 희생에 감화된 평생의 흠모자가 되었습니다. 
바하올라와의 관계
몇 년 후 그는 바하올라에게 일련의 질문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중대한 의미를 지닌 두 편의 성한(Tablet)이 계시되었습니다. 첫 번째 성판은 1878년에 그에게 보내졌습니다. 
이 성한들은 현재 바하이 경전인 『융합의 천막』(The Tabernacle of Unity) 에 수록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바하올라의 유명한 구절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의 필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숙고를 그 요구와 긴급함에 집중하라", "여러분은 하나의 나무에서 열린 열매요, 하나의 가지에 달린 잎사귀들이라" 는 인류 통일의 핵심 원칙들이 선언되어 있습니다.

───

호칭 'Ṣáḥib'의 의미
인도에서는 '사헤브(Sahib)'를 존경받는 인물에 대한 공식 호칭 또는 직함으로 사용하는 관습이 있으며, 영어의 'Excellency'나 페르시아어의 'Jinab'에 해당하는 존칭입니다. 
즉, Ṣáḥib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붙여진 존칭이며, 마닉치 사히브의 본명은 Manikji Limji Hataria입니다.

 

또한,

 

The Lawh-i-Manikji Sahib 또는 Tablet to Mánikchí Ṣáḥib 는 바하올라의 초기 서한 중 매우 중요한 성한으로 여겨집니다.

이유는, 바하올라의 성구중 가장 유명한 성구인

“Ye are the fruits of one tree, and the leaves of one branch.” 

너희는 한 나무의 가지요, 한 가지의 잎사귀이니라 라는 말씀이 처음 등장하는 성한이기 때문입니다.

 

참조: Bahá'í Reference Library, The Tabernacle of Unity 서문 
https://www.bahai.org/library/authoritative-texts/bahaullah/tabernacle-unity/1#692452345

 

셰이크 살만 (Shaykh Salmán)

셰이크 살만(Shaykh Salmán)은 바하올라의 가장 신실하고 헌신적인 초기 신도 중 한 명이자, '전령(Messenger)'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생애와 배경

살만은 이란 남서부 힌디얀(Hindíyán) 출신으로, 1850년경 바압의 신앙을 처음 접하고 이후 바하올라의 신도가 되었습니다.

 

"살만"이라는 이름의 의미

예언자 무함마드에게도 루즈-비흐(Ruz-bih)라는 이름의 페르시아인 동반자 겸 전령이 있었는데, 그 역시 "살만"이라고 불렸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의 헌신적인 봉사를 인정하여 이 이름을 하사하셨습니다.

 

전령(Messenger)으로서의 삶

살만은 바하올라의 서신을 신도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의 편지를 다시 바하올라께 가져오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 거리는 매우 방대하여, 바하올라께서 악카로 유배되셨을 때는 편도 2,000킬로미터 이상을 도보로 이동해야 했습니다.

매년 한 차례, 살만은 페르시아에서 이라크로, 또는 아드리아노플로, 또는 악카의 감옥까지 도보로 찾아왔습니다. 양파와 빵만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놀라운 인내력으로 여행하였고,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으며, 편지나 서판(Tablet)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특별한 일화

한번은 이란 당국의 손에 서판이 넘어갈 위험에 처하자, 살만은 자신이 운반하던 서판을 직접 먹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록 문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만은 마음이 너무나 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하올라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느 서판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올바르게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바하올라와의 특별한 관계

바하올라께서는 살만에게 "자비로운 자의 사자(Messenger of the Merciful)"라는 칭호를 내리셨습니다. 바하올라의 서한 중에는 그의 이름으로 계시된 것들도 있으며, 그 자신이 바하올라로부터 받은 편지들의 수신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압돌바하의 증언

압돌바하께서는 살만을 그분의 저서 《신실한 자들의 기념(Memorials of the Faithful)》에서 이렇게 기리셨습니다:

"역사의 여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살만만큼 신뢰할 만한 전령은 일찍이 없었으며, 그와 견줄 만한 전령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살만이여! 「태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의 문(門)은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인간의 면전에 굳게 닫혀 있을 것이다. 인간의 그 어떤 이해력도 그분이 계신 성스러운 궁정에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비의 증표요, 자애의 증거로서 신성한 인도의 「태양」이자, 당신의 단일성의 「상징」이신 분들을 인류에게 현시하시고, 이들 성결한 존재들에 대한 지식이 바로 당신 자신에 대한 지식과 동일한 것이 되도록 정하셨다. 누구든 이분들을 알아본 사람은 하느님을 알아본 사람이다. 누구든 이분들의 부름에 귀 기울인 사람은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 사람이요, 누구든 이분들의 계시의 진리를 증언한 사람은 하느님 자신의 진리를 증언한 사람이다. 누구든 이분들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사람이요, 누구든 이분들을 불신한 사람은 하느님을 불신한 사람이다. 이들 한 분 한 분은 이 세계와 하늘의 영토를 연결하는 「하느님의 길」이요, 하늘과 땅의 왕국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그분의 「진리의 표준」이다. 이분들이 바로 사람들 가운데 임하신 하느님의 현시요, 하느님의 진리의 증거요, 하느님의 영광의 증적이다.”

 

 

 

O Salmán! The door of the knowledge of the Ancient Being hath ever been, and will continue forever to be, closed in the face of men. No man’s understanding shall ever gain access unto His holy court. As a token of His mercy, however, and as a proof of His loving kindness, He hath manifested unto men the Daystars of His divine guidance, the Symbols of His divine unity, and hath ordained the knowledge of these sanctified Beings to be identical with the knowledge of His own Self. Whoso recognizeth them hath recognized God. Whoso hearkeneth to their call, hath hearkened to the Voice of God, and whoso testifieth to the truth of their Revelation, hath testified to the truth of God Himself. Whoso turneth away from them, hath turned away from God, and whoso disbelieveth in them, hath disbelieved in God. Every one of them is the Way of God that connecteth this world with the realms above, and the Standard of His Truth unto every one in the kingdoms of earth and heaven. They are the Manifestations of God amidst men, the evidences of His Truth, and the signs of His glory

선지자께서 말씀하시기를—하느님의 복과 평강이 그에게 있을지어다—“악카(‘Akká)에는 자발적인 선행과 유익한 행실이 있나니, 이는 하느님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 특별히 베푸신 것이라. 악카에서 말하기를, ‘하느님께 영광이요 하느님께 찬송이로다. 하느님 외에 다른 하느님이 없사오며 하느님은 지극히 크시도다. 높고 위대하신 하느님 외에는 아무런 권능도 힘도 없도다’ 하는 자가 있으면, 하느님께서 그를 위하여 천 가지 선행을 기록하시고, 그에게서 천 가지 악행을 도말하시며, 낙원에서 그를 천 단계나 높이시고 그의 허물을 사하시리라.
또한 누구든지 악카에서 말하기를, ‘내가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나이다’ 하면, 하느님께서 그의 모든 죄과를 사하시리라. 아침과 저녁으로, 또한 밤중과 새벽녘에 악카에서 하느님을 기억하는 자는, 하느님의 길에서—그는 지존하시도다—칼과 창과 무기를 든 자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더 나으니라!” 하셨느니라.
하느님의 사도께서도—하느님의 복과 평강이 그에게 있을지어다—이같이 말씀하시되, “저물 때에 바다를 바라보며 해 질 녘에 ‘하느님은 지극히 크시도다!’ 외치는 자는, 그 죄가 비록 모래더미같이 쌓였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사하시리라. 또한 ‘하느님은 지극히 크시도다!’—그는 지존하시도다—를 반복하며 마흔 번의 파도를 세는 자는, 하느님께서 그의 이전 죄와 이후의 죄를 다 사하시리라” 하셨느니라.
하느님의 사도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온 밤을 바다를 바라보며 지내는 자는, 루큰(Rukn)과 마캄(Maqám) 사이에서 온전히 두 달을 보내는 자보다 나으니라. 바닷가에서 자라난 자는 다른 곳에서 자라난 자보다 나으며, 바닷가에 눕는 자는 다른 곳에 서 있는 자와 같으니라” 하셨도다. 진실로 하느님의 사도께서—지존하신 하느님의 복과 평강이 그에게 있을지어다—참되게 말씀하셨느니라.

 


The Prophet—may the blessings of God and His salutations be upon Him—is stated to have said: “In ‘Akká are works of supererogation and acts which are beneficial, which God vouchsafed specially unto whomsoever He pleaseth. And he that saith in ‘Akká: ‘Glorified be God, and praise be unto God, and there is none other God but God, and most great is God, and there is no power nor strength except in God, the Exalted, the Mighty,’ God will write down for him a thousand good deeds, and blot out from him a thousand evil deeds, and will uplift him a thousand grades in Paradise, and will forgive him his transgressions. And whoso saith in ‘Akká: ‘I beg forgiveness of God,’ God will forgive all his trespasses. And he that remembereth God in ‘Akká at morn and at eventide, in the night-season and at dawn, is better in the sight of God than he who beareth swords, spears and arms in the path of God—exalted be He!”
The Apostle of God—may the blessings of God and His salutations be upon Him—hath also said: “He that looketh upon the sea at eventide, and saith: ‘God is Most Great!’ at sunset, God will forgive his sins, though they be heaped as piles of sand. And he that counteth forty waves, while repeating: ‘God is Most Great!’—exalted be He—God will forgive his sins, both past and future.”
The Apostle of God—may the blessings of God and His salutations be upon Him—hath said: “He that looketh upon the sea a full night is better than he who passeth two whole months betwixt the Rukn and the Maqám. And he that hath been brought up on the shores of the sea is better than he that hath been brought up elsewhere. And he that lieth on the shore is as he that standeth elsewhere.”Verily, the Apostle of God—may the blessings of God, exalted be He, and His salutations be upon Him—hath spoken the truth.

 

 


" 온 밤을 바다를 바라보며 지내는 자는, 루큰(Rukn)과 마캄(Maqám) 사이에서 온전히 두 달을 보내는 자보다 나으니라."의 의미

●루큰 (Rukn): 아랍어로 '모퉁이' 또는 '기둥'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카바 신전의 모퉁이를 의미하며, 특히 '검은 돌(Black Stone)'이 박혀 있는 모퉁이나 그 맞은편의 '야마니 모퉁이(Rukn al-Yamani)'를 지칭합니다. 이슬람 전통에서 이 모퉁이들은 매우 신성시됩니다.

●마캄 (Maqám): '마캄 이브라힘(Maqám Ibráhím, 아브라함의 서 있는 자리)'을 지칭합니다. 이는 카바 신전 바로 옆에 있는 성스러운 바위로, 아브라함이 카바를 지을 때 딛고 섰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즉, 루큰과 마캄의 사이라 함은,이슬람 전통에서 루큰과 마캄 사이의 공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로 여겨지며, 무슬림들은 이곳에서 올리는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는다고 믿으며, 순례객들이 가장 간절히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장소를 말합니다.

따라서, 
" 온 밤을 바다를 바라보며 지내는 자는, 루큰(Rukn)과 마캄(Maqám) 사이에서 온전히 두 달을 보내는 자보다 나으니라."라는 말의 의미는 바하올라께서 머물던 악카라는 도시가 지닌 새로운 영적 중요성과 거룩함이 그 무엇보다도 압도적임을 강조하는 비유적 표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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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슬람 신비주의와 바하이(Bahá'í) 신앙에서 아주 중요하고 아름답게 다뤄지는 상징, 사드라톨 몬타하(Sadratu'l-Muntahá)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름이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번역하자면 ‘궁극의 경계에 있는 로트나무’라는 뜻입니다. 우주의 끝자락,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홀로 서 있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나무 한 그루를 상상해 보세요.
이 나무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왜 옛 사람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 이 나무를 떠올렸을까요?

지금부터 알기 쉽고 흥미롭게 풀어드릴게요! 


천사조차 멈춰서야 했던 우주의 끝자락 

'사드라톨 몬타하'라는 말은 본래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53:14)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의 안내를 받아 밤하늘을 날아 천국을 여행하는 ‘야간 여행(미라즈, Mi'raj)’을 하게 됩니다. 일곱 번째 하늘의 끝에 다다랐을 때, 그곳에 거대한 ‘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대천사 가브리엘조차 그 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나무를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갔다간 빛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오직 예언자만이 그 나무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죠. 여기서 '사드라톨 몬타하'  는 '그 누구도 넘어설 수 없는 우주와 인식의 절대적인 한계선'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완벽한 경계선’ 

바하이(Bahá'í) 신앙은 이 나무의 상징을 더욱 깊고 철학적인 의미로 발전시켰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작은 머리로 무한하고 영원한 창조주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개미가 인간의 스마트폰 기술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사드라톨 몬타하'는 바로 이 지점을 설명합니다. 이 나무는 ‘창조주(하느님)와 피조물(인간)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선’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심지어 천상의 천사라 할지라도 이 나무를 넘어서 하느님의 진짜 모습(본질)을 직접 볼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 지성의 한계이자, 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상징인 셈이죠.


우리를 향해 가지를 뻗은 ‘ 하느님의 메신저’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영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드라톨 몬타하' 의 두 번째 진짜 의미가 나타납니다.
비록 우리가 나무 너머로 갈 수는 없지만, 그 나무는 우리를 향해 무성한 가지를 뻗고 맛있는 열매를 맺으며 시원한 그늘을 내어줍니다. 바하이 사상에서 이 나무는 바로 ‘ 하느님의 현시자(Manifestation of God)’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현시자란, 시대마다 인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러 온 위대한 영적 스승들—예를 들어 모세, 조르아스터, 크리슈나, 부처, 예수, 무함마드, 바하올라 등을 말합니다.
우리는 태양(하느님)을 맨눈으로 직접 쳐다보면 눈이 멀어버리지만, 맑은 거울(현시자)에 비친 태양 빛은 바라볼 수 있습니다. 즉, '사드라톨 몬타하'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유일한 창구가 되어주는 은혜로운 나무입니다.


동쪽에도 서쪽에도 속하지 않는 ‘빛나는 나무’ 

이 나무의 신비로움은 코란의 유명한 구절인 ‘빛의 구절(Verse of Light, 24:35)’과 연결될 때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이 구절에는 ‘축복받은 올리브 나무’가 등장합니다. 이 나무는 "동쪽에도 속하지 않고 서쪽에도 속하지 않으며, 불이 닿지 않아도 스스로 빛을 발하는 기름을 품고 있다"고 묘사됩니다. 학자들은 이 올리브 나무가 곧 '사드라톨 몬타하'와 같은 의미라고 말합니다.
동쪽도 서쪽도 아니다?
이는 이 나무(하느님의 메신저가 가져온 진리)가 특정 나라, 특정 시대, 특정 문화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합니다. 동양과 서양,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라는 것이죠.
스스로 빛을 낸다?
외부에서 불(지식)을 빌려올 필요 없이, 신성한 메신저 그 자체가 우주를 밝히는 빛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서의 쉼 

결국 '사드라톨 몬타하'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모든 우주의 비밀을 다 파헤치거나 신과 똑같이 되려는 오만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가야 할 가장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이 신성한 나무 아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나무(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가 만들어주는 평화로운 그늘 아래에서 쉬고, 그 나무가 맺은 영적인 열매(사랑, 자비, 정의)를 먹으며, 나무가 뿜어내는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영혼이 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 아닐까요?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내 마음속 우주 끝자락에 서 있는 크고 환한 ‘궁극의 로트나무’를 상상해 보세요. 그 나무가 여러분에게 따뜻한 빛과 평안한 그늘을 내어주기를 바랍니다.

 


 

바하이 신앙에서 표현하는

'사드라톨 몬타하'와 같은 표현

 

=  신성하고 거룩한 로트나무

=  신성한 로트나무

=  지나갈 길이 없는 로트나무

=  가장 먼 로트나무

=  더이상 지나갈 수 없는 나무

=  신성한 계시의 나무

=  복된 로트나무

=  사드라톨 몬타하는 Lote-Tree 또는 Sidrah Tree 로 번역되기도 하며 바하이 신앙에서는 하느님의 현시자를 의미한다고 압돌바하께서 회고하심. (Abdu'l-Bahá, Memorials of the Faithful, p. 175)

 

 

참고문헌 (References)
1. Compilation on Sadratu'l-Muntahá. Bahá'í Library Online. (https://bahai-library.com/compilation_sadrat_muntaha)
2. Macias. The Verse of Light: A Bahá'í Perspective on Qur'an 24:35. Bahá'í Library Online. (https://bahai-library.com/macias_verse_light)

한국인에게 보내는 서신

 

오, 하늘 나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짓 없는 인사의 말이 압돌 바하의 귀에 들려 왔으며, 그대들이 전하는 말은 나에게 커다란 정신적 즐거움을 안겨 주었노라.

 

하느님께 찬미 있으옵소서. 곧 천상의 빛으로써 인도하시와 그대들을 실체성의 태양으로 이끌고, 영속하는 삶을 내려 주시고, 하늘의 계몽을 그대들에게 허락하여 주셨나니, 그대들은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에 의하여 하느님의 정신적 장미 동산에 심어진 어린 묘목과 같으니라. 바라건대, 실체성의 태양의 따스함을 통하여 자비의 소나기를 듬뿍 받아, 은혜의 산들바람이 솔솔 부는 가운데, 그대들이 나날이 성장 발달하여 각자 모두가 꽃이 만발하고 잎이 무성하니 만백성 위에 그늘을 던져 주는 축복된 나무가 되기를.

 

압하 왕국의 뭇 은총은 실체성이라는 태양의 광선과도 같느니라. 이 실체성의 태양은 하늘과 땅을 밝게 비추고, 그 별을 밝게 빛나는 달로 만들고, 티끌을 태산으로 바꾸고, 약한 자에게는 힘을 주고, 병든 자에게는 영원한 치유를 주며, 가난한 자에게는 하늘의 재보를 내리게 하며, 억압된 자에게는 영원한 승리를 굳게 하여 주며, 어둠 속에 헤매는 백성들을 빛 속에 사는 백성으로 만드느니라.

 

오, 하늘나라의 벗들이여, 이미 하늘의 수많은 빛이 열렸으며, 하느님의 수많은 빛이 비추어 나왔고, 하늘의 부르심이 울려 퍼졌느니라. 그대들이 온 인류를 불러들여 이 하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도록 일러주고, 하늘의 세계에 들어오도록 할 것이니, 그러므로써 저들이 새로운 정신을 찾고, 새로운 삶에 이를 수가 있으리라. 어떠한 형편이나 경우에 있어서도 언제나 내 가슴과 정신이 그대들과 함께 있느니라.

 

그대들에게 압하의 영광이 있기를 !

 

압돌 바하 압바스

1921년 11월 5일

하이파(팔레스타인)

 

 

(이 서한은 <한국의 새 친구들>에게 전해졌으며, 아그네스 알렉산더 여사 및 오 상순씨를 비롯한 15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He is God!
      O ye heavenly sons! Your heartfelt and sincere greetings have reached 'Abdu'l-Bahá's ears and your message gave great spiritual pleasure.
      Praise be to God that celestial light guided and led you to the Sun of Reality, bestowed everlasting life and granted heavenly illumination. Ye are like seedlings which have been planted by the hand of Bestowal in His Spiritual Rose-Garden. It is my hope that through the warmth of the Sun of Reality, the pouring down of the showers of mercy and the wafting of the breezes of bestowal, ye may progress day by day, so that each one may become a blessed tree, full of leaves and flowers and throw your shade over great multitudes.

      The Graces of the Kingdom of Abhá are the rays of the Sun of Reality. It illumines the earth and heaven, makes the star a shining moon, turns the speck into a huge mountain, bestows strength to the weak, gives everlasting healing to the sick, grants heavenly treasures to the poor, confirms the oppressed ones to everlasting glory and turns the people of darkness to those of light.

      O heavenly friends, the doors of heaven have been opened, the lights of God have shone forth and the heavenly Call has been raised. Summon ye all humanity to listen to this Heavenly Call and invite them to the Celestial world, so that they may find a new spirit and attain to a new life. In all conditions, my heart and spirit are with you. Upon ye be the Glory of Abh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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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단식이성약의 중심이신 압돌바하님께 얼마나 힘겨운 일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악카의 거주 신자들은 감옥의 광휘(effulgences of the Prison)”라는 문구가 악카에서의 생활 중 고난과 시련을 특징짓기 위해바하올라께서 계시하신 용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 말은 신자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고난(감옥의 광휘)이 많았지만, 주로 환경의 변화로 인해 많은 부분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바하올라께서 병영에 감금되어 계시던 시절, 수많은 주민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여러 치명적인 전염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전염병을 일으키고 퍼뜨리던 악취 나는 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기후의 변화도 이겨내지 못한감옥의 광채중 하나는 벼룩, 모기, 파리, 개미의 끊임없는 습격이었는데, 이는 악카의 벌레에 물린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표현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30일간의 단식이었습니다. 이는 이슬람의 성월을 기념하기 위해 감금 기간이 끝날 때까지 지키라는 바하올라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진실하고 헌신적인 신자라면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이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슬람 달력으로 라마단 기간에 지켜지는 이 30일간의 단식은 1909년 감금 기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지켜졌습니다. 비교적 편안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순례자들과 거주 신자들에게 30일간의 단식을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업무와 고난으로 가득 찬 삶을 사셨던 성약의 중심께는 그러한 단식이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라마단 기간에 모든 정부 관리를 포함한 악카의 무슬림들은 낮과 밤을 바꾸어 낮 동안 편하게 잠을 자고, 밤에는 단식을 깨고 의무 기도를 마친 후 압돌바하의 접견실로 몰려와 밤새 시간을 보내며 새벽까지 그분을 괴롭혔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영적이고 천상의 존재인 분께서는 해가 뜨기도 전에 그분의 수많은 업무를 시작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에는 압돌바하님께 어떠한 휴식도 불가능했습니다. 때로는 식사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아 아침 식사 없이 단식을 시작하고 저녁 식사 없이 단식을 마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가장 지독한 감옥의 광휘 (effulgences of the Most Great Prison)는 그분의 힘을 빼앗고 육신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단식 기간 중 여러 번 저는 그분께서 극도로 탈진하신 모습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분께서 저를 접견실 구역으로 부르셨습니다. 말씀하실 때 목소리에는 우울함과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분은 천천히 바닥을 서성이시다가 힘겹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셨습니다. 피로의 증상은 곧 불쾌감과 지침의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구나. 어제 아침도 먹지 못했고 단식을 깰 시간이 되었을 때도 식욕이 없었어. 이제 좀 쉬어야겠다.”

 

말씀하시는 동안 그분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하여 저는 그분의 안위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담하게 외쳤습니다.

 

사부님께서 단식을 그만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니, 그것은 적절치 않다.”

 

압돌바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끈질기게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느끼시는 상태로는 단식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잠시 쉬면 될 것이다.”

 

압돌바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신자들은 사부님께서 육체적으로 그렇게 쇠약하고 탈진하신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압돌바하님께서는 제가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를 바라시며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저의 열정을 더욱 불태웠고, 저는 계속해서 그분께 단식을 중단하시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분께서 굽히지 않으시자 제 말은 눈물과 탄식으로 뒤섞였습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갑자기 저는 압돌바하님께서 제시한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굴복할 수 없는 새로운 자질을 제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완고하게 버티며 다짐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내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계속 간청하고 애원하고 탄원할 것이다. 세상의 사랑하올 분께서 이런 상태에 계신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간청하고 애원하는 동안 이상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마치 제가 이 문턱(Threshold)에 바치는 봉사와 헌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여겨지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이 일에 성공한다면 그것을 좋은 징조로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지성소(Most Holy Shrine)에 도움을 간청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입술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럼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느냐?”

 

압돌바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저는 그분께 간청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오셔서 단식을 깨주십시오. 바하올라의 죄 많은 종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친절과 사랑의 정수이신 그분의 마음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고, 그분께서는 꽤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물론이지, 물론이고 말고, 당연하지.”

그분은 즉시 나시르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끓여서 차 한 잔을 타 오너라.”

 

그러고는 그분의 축복받은 손을 제 어깨에 얹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나에게 만족하느냐? 원한다면 이제 네 업무로 돌아가거라. 나는 차를 마시고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그 순간 기쁨과 환희의 감정이 온몸을 휘감아 저는 이성적인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바라보시며 압돌바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단식을 깨는 것을 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으냐? 좋다, 이리 와서 앉거라.”

 

그분은 작은 집무실로 물러나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하셨고, 저는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아가 리따가 특별한 용무로 사부님을 뵈러 들어왔습니다. 압돌바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은 데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의 간청에 따라 단식을 깨려 한다.”

 

아가 리따가 방을 나가자 찻잔 하나와 설탕 그릇이 놓인 주전자가 들어왔습니다. 압돌바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비 칸(Jinab-i-Khan), 자네는 칭찬받을 만한 봉사를 했네. 하나님께서 자네를 축복하시기를. 내가 지금 단식을 깨지 않았더라면 분명 앓아누웠을 것이고 강제로 단식을 깨야만 했을 거야.”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그분께서는 다른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말씀들을 제게 내려주셨습니다. 그 후 그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좀 나아졌으니, 나는 일을 하러 가겠네. 그리고 자네를 위해 계속 기도하겠네.”

 

그리고 그분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접견실에는 고() 아가 시이드 아흐마드--아프난(사후에 순교자의 지위를 부여받은 바로 그 아프난)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압돌바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나비 아프난,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아 쉬려고 했으나 사랑하는 친구의 간청으로 단식을 깼네. 그렇게 해서 기쁘네. 그렇지 않았으면 앓아누웠을 테니 말일세. 하지만 이제 몸이 좋아져서 대업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네.”

 

이 말씀을 남기시고 그분은 방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지나비 아프난은 순수한 기쁨과 환희의 빛으로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하는 친구가 누구입니까? 제가 그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명백한 승리에 도취되어 외쳤습니다.

 

 그건 바로 접니다, 바로 저예요!”

 

요컨대, 목숨을 바치려 하기보다는 천상의 기쁨으로 가득 차서 우리는 서로 끌어안았고 우리의 영혼은 날아올랐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저는 30일간의 단식이 진정으로최대 감옥의 광채였다는 사실을 제 기억의 저장소에 간직했습니다.

 

- 유네스 아프루크테 박사, <악카에서의 9년 회고록> 중에서

 

 

 

 

 

 

 

 

 

The following beautiful story illustrates how taxing that Fast was on the Master, ‘Abdu’l-Bahá:
The resident believers used to say that the phrase "effulgences of the Prison" was a term which had been revealed by the Tongue of Glory [Bahá’u’lláh] to characterize the hardships and tribulations associated with life in Akka; it had endured among the friends through word of mouth.
At the beginning these hardships were numerous, but many of them disappeared little by little, mainly because of the changes to the environment. Others still persisted. The various deadly epidemics, which during the time of Bahá’u’lláh's imprisonment in the barracks had annihilated a large number of the inhabitants, had disappeared leaving no trace, as had the foul-smelling fumes which had caused and spread infectious diseases.
Still, one of those "effulgences of the Prison" which the passing of time and change in the climate had failed to overcome was the assault of the fleas, mosquitoes, flies and ants, which confirmed the expression, 'Blessed the one who is bitten by the insects of Akka'. Another was the thirty-day fast, which according to the command of Bahá’u’lláh was to be observed until the end of the period of incarceration to commemorate the Islamic holy month. Every sincere and devoted believer was expected to observe it gladly and of his own free will.
This thirty-day fast, which according to the Islamic calendar is observed in the month of Ramadan, continued to be kept until the end of the period of imprisonment in 1909 A.D. For the pilgrims and resident believers, who led relatively comfortable and peaceful lives, observing the thirty-day fast was not a difficult undertaking. But for the blessed person of the Centre of the Covenant, whose life was filled with numerous occupations and hardships (as described in Chapter 3 of this chronicle), it can be imagined how arduous and exhausting such an observance was. This was especially true when in the month of Ramadan the Muslims of Akká, including all the government officials, switched their nights and days and conveniently slept during the daytime, while at night, after breaking the fast and observing the obligatory prayers, they crowded ‘Abdu’l-Bahá’s biruni [living room] to while away the night and disturb the Master until dawn.
But that spiritual and heavenly Being had to begin His many tasks before the rising of the sun, as has been described in previous chapters. And so in the month of Ramadan no comfort was possible for ‘Abdu’l-Bahá; at times even the opportunity to partake of the meals did not present itself, and therefore His fast began without any breakfast and ended without any dinner. Thus the "effulgences of the Most Great Prison" sapped His strength and weakened His body. Many times during these days of fasting I saw the Master in such a state of exhaustion that I was deeply shaken.
On one such day He summoned me to His presence in the biruni area. As He spoke, signs of melancholy and weariness were apparent in His voice. He slowly paced the floor and then began to climb the stairs with difficulty. The symptoms of fatigue gave way to expressions of displeasure and weariness: "I don't feel well. Yesterday I did not eat any breakfast and when the time came to break the fast I had no appetite. Now I need a bit of rest." As He spoke, His face was so ashen that I became alarmed for His Well-being. So I boldly exclaimed, "It is better for the Master to break the fast."
"No, it is not proper," was ‘Abdu’l-Bahá’s reply.
I persisted. "With the way the Master feels, fasting itself is not proper either."
"It is not important, I will rest awhile" responded ‘Abdu’l-Bahá.
"The believers cannot endure to see the Master in such a state of physical weakness and exhaustion," I remained unyielding.
‘Abdu’l-Bahá gave an effective and moving explanation in the hope of convincing me to relent. It did not work. In fact, it increased my ardour, and I continued to try to persuade Him to break the fast. As He would not yield, my words became mixed with tears and lamentations. But He would not let up.
Suddenly I realized that I had found a new quality in myself which did not allow me to give in, despite all the reasons that ‘Abdu’l-Bahá had offered. And so, stubbornly holding my ground, I told myself, "Regardless of what may come of this, I will continue to beg, plead and implore until I achieve my purpose, for I can no longer behold the Beloved of the world in such a condition."
While begging and supplicating, strange thoughts crowded my mind. It was as if I wished to discover in what light my servitude and devotion to that Threshold was regarded in the sight of God. As such, I would consider success in this to be a good omen. And so from the very depths of my heart I entreated the Most Holy Shrine for assistance.
Spontaneously these words flowed from my lips, "So may I make a suggestion?"
"What do you want me to do?" ‘Abdu’l-Bahá replied.
Tears streaming from my eyes, I begged Him, "Come and for this once break your fast, to bring happiness to the heart of a sinful servant of Bahá’u’lláh."
God be praised, I know not where those words came from, but they brought such joy to the heart of that quintessence of kindness and love that quite loudly He exclaimed, "Of course, of course, of course."
Immediately He called for Nasir and told him, "Put some water in the pot and boil it and make a cup of tea for me." And then He put His blessed hand on my shoulder and said,” Are you pleased with me now? If you wish, you can go back to your tasks now and I will drink the tea and pray for you."
Such feelings of joy and ecstasy flooded my being at that moment that I was rendered incapable of a reasonable response. Looking at me, ‘Abdu’l-Bahá remarked, "Do you want to be present to see with your own eyes when I break my fast? Very well, come and sit down." He then withdrew to His small office, took up the pen and began to write, as I watched. Aqa Rida now came into the presence of the Master for some particular purpose. ‘Abdu’l-Bahá remarked, "Today I do not feel well and in response to the request of one of the loved ones of God I want to break my fast."
As Aqa Rida left the room, the teapot with a single glass and a bowl of sugar were brought in. Addressing me, ‘Abdu’l-Bahá said, Jinab-i-Khan, you have performed a praiseworthy service. May God bless you. If I had not broken the fast now; I would surely have fallen ill and would have been forced to break the fast." And with every sip of the tea, He bestowed on me other kind and loving words. After that He arose and said, "Now that I feel better, I will go after my work and will continue to pray for you."
And then He started down the stairs. In the biruni reception room there was no one except the late Aqa Siyyid Ahmad-i-Afnan (the same Afnan upon whom the rank of martyr was bestowed posthumously). Addressing him, ‘Abdu’l-Bahá said, "Jinab-i-Afnan, today I was not feeling well and intended to rest, but at the request of a beloved friend I have broken my fast. I am happy to have done so, for otherwise I would have fallen ill. But now I feel well and can continue the work of the Cause." Having said this, He walked out of the room.
Jinab-i-Afnan, his eyes shining with the light of pure joy and delight, said, "God Almighty, who was that 'beloved friend', so that I can sacrifice my life for him?" And I, drunk with manifest victory, exclaimed, "It was I, it was I"
In brief, rather than any attempt at sacrifice of life, and filled with heavenly joy, we embraced each other as our spirits soared. As we did so, I placed in the storehouse of my memory the fact that the thirty-day fast truly was an "effulgence of the Most Great Prison".
- Dr. Youness Afroukhteh, Memories of Nine Years In Akká-

아야메하(Ayyám-i-Há)란 무엇인가요?

아야메하(Ayyám-i-Há)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즐겁게 기념하는 며칠간의 축제입니다. 보통 2월 말에서 3월 초에 진행됩니다.

 

아야메하의 정의
아야메하는 서로 환대하며 친교를 나누고, 궁핍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기간입니다. 또한, 이 기간이 끝난 직후 시작되는 '단식월'을 준비하는 데 전념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야메하는 바하이력의 18번째 달과 19번째 달 사이에 위치하며, 연도에 따라 날짜와 기간이 달라집니다

(보통 양력 2월 25일경 시작하여 4~5일간 지속 / 2026년 아야메하는 2월 24일 일몰로부터 3월 1일 일몰까지 입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지성서인 《케타베 악다스 (Kitáb-i-Aqdas)》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년을 구성하는 19개월을 제하고 남은 날들은 단식 달 바로 앞에 두라. 짐은 온갖 밤낮 중 이 기간을 글자 '하(Há)'의 현현일로 명하였는바, 그리하여 이 날들만큼은 1회계 연도라는 제한에 구애받지 않느니라. 바하의 백성들은 이 기간 내내 자신과 친척, 더 나아가 불우한 사람들에게 성찬을 대접하고 뛸 듯한 기쁨과 환희에 넘쳐 환호성을 치며 주님을 맞아들여 찬양하고, 주님을 찬송하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함이 마땅하니라."

 

* 바하이 신앙에서 사용하고 있는 바디력은 바하올라의 오심을 예고한 현시자인 바압에 의해 제정된 달력체계입니다. 바디력은 19일로 이루어진 19개월과 윤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자적인 달력체계를 제정함으로서 이전 종교와의 단절을 선언했습니다. 특히 아야메하를 기념하는 윤일의 도입은  중요한 단절을 의미합니다. 이슬람에서는 꾸란에 의거 윤일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압께서 예언한 이시대의 현시자인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율법서인 키타베 악다스에서  윤일인 아야메하를 단식월의 전에 놓게 하여 18월과 19월 사이에 배치하면서 바디력을 확정하고 채택하셨습니다.

 

아야메하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아야메하(Ayyám-i-Há)는 "하(Há)의 날들"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하'라는 글자가 하느님의 신성한 본질을 상징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제럴드 킬(Gerald Keil)은 그의 저서 《시간과 바하이 시대 (Time and the Baha'i Era)》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하(Ha)'의 자음 문자 값은 5이며, 이것은 바압(Báb)이라는 단어의 자음 문자 값과도 같습니다. 하의 날들은 바압과 관련된 달인 '알라(Ala)의 달(단식월)' 바로 앞에 위치합니다. 이를 종합하면 바압이 그분 이후에 오실 현시자를 위해 길을 닦았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야메하는 달력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삽입된 '윤일(Intercalary days)'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특정 역사적 사건이나 추모일을 기념하는 다른 바하이 성일과 달리, 아야메하는 관대함, 사랑, 연민, 우정, 그리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속성을 지닌 축제입니다. 이는 내면의 묵상과 절제를 강조하는 '단식' 기간과 대조를 이루며 균형을 맞춥니다.

 

아야메하는 어떻게 기념하나요?

 

바하올라(Bahá'u'lláh)께서는 의식과 형식을 최소화하셨기에, 아야메하는 정해진 틀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기념합니다. 많은 공동체와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거나 선물을 교환하기도 합니다. 축제는 화려할 수도, 소박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사랑의 분위기 속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축제가 됩니다.

다음은 바하올라와 초기 바하이 신자들이 아야메하를 어떻게 보냈는지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일화: 마즈라에에서의 아야메하

아야메하의 첫날, 한 순례자가 주님(바하올라)과 아크카(Akka)에 거주하는 모든 신자를 점심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저(필자) 또한 마즈라에(Mazra'ih)에서 열린 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이른 아침, 정원 입구의 넓고 쾌적한 공간에 대형 천막이 설치되었고, 성지에 거주하는 지역민과 순례자를 포함한 약 200명의 바하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정오 무렵이 되자 '축복받은 아름다우신 분(바하올라)'께서 자택에서 나오시어 대형 천막으로 향하셨습니다. 모든 바하이가 천막 앞에 기립해 있었고, 주님 앞에 있던 미르자 아까 잔(Mírzá Áqá Ján)이 당일 계시된 새벽 단식 기도문을 낭송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 바하올라께서는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덕담을 건네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축제일인데, 어찌 되었느냐? 진정한 축제가 열려야 하지 않겠느냐?"

대형 천막의 중앙 식탁에는 주님과 아흐산(바하올라의 자손들)께서 앉으셨습니다. 자리에 여유가 있자, 주님께서는 몇몇 바하이의 이름을 부르셨는데 황송하게도 그중에는 제 이름도 있었습니다.
"아까 타헤르, 자네 이리 와서 앉게."

저는 천막에 들어서자마자 주님의 어전에서 식탁에 합석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바하올라께서는 "이제 충분히 잘 먹었으니, 만족한 사람은 자리를 떠도 되겠지요."라고 농담을 건네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는 즉시 일어났으며, 주님께서도 자리를 뜨셨습니다.

주님의 접시에 남은 음식은 벗들이 나누어 받았고, 참석자들은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천막 안에서 즐겁게 식사했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이 축제에 참석한 모두가 물질적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으로 충만해지는 지극한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아데브 타헤르자데, 《바하올라의 계시》 제4권 8쪽

 

 

 

삼위일체와 세 위격의 의미


신성(神性)의 실체는 모든 피조물의 이해를 초월하며, 인간의 마음과 이해력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상상할 수 없고, 모든 인간적 개념을 넘어섭니다. 그 실체는 어떤 분할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분할과 다중성은 피조물, 즉 우연적 존재의 특성이며, 필연적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초월성과 현현

신성의 실체는 유일성 자체를 초월합니다. 하물며 다중성을 초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 신성한 실체가 낮은 지위나 단계로 내려오는 것은 결핍과 마찬가지이며, 완전함과 상반되며, 전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신성은 항상 거룩함과 순수함의 가장 높은 경지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타나시고 계시하신다는 모든 언급은 그분의 빛이 발산되는 것에 관한 것이지, 존재의 단계로 내려오시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완전함이시며, 피조물은 절대적인 불완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존재의 단계로 내려오시는 것은 가장 큰 불완전함일 것입니다. 오히려 그분의 현현, 나타나심, 그리고 발산은 마치 깨끗하고 밝고 잘 닦인 거울에 태양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현현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찬란한 징표입니다. 예를 들어, 태양의 광선은 모든 땅의 사물에 비치지만, 평야, 산, 나무, 과일에 비치는 빛은 오직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하고, 성장하게 하며,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은 마치 진리의 태양이 그 속성들과 완전함의 충만함 속에서 계시되고 나타나는 맑은 거울과 같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본질은 가장 순수하고 명확한 밝고 잘 닦인 거울이었습니다. 진리의 태양이신 신성의 본질은 그 거울 속에 나타나 그 빛과 열을 발산했지만, 거룩함의 높은 경지와 성스러움의 하늘에서 내려와 그 안에 머물지는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신성은 그 높음과 숭고함 속에 계속 머물지만, 그 모든 아름다움과 완전함 속에서 거울 안에 계시되고 나타났습니다.
이제 우리가 두 거울, 즉 하나는 그리스도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 안에서 태양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다시 말해, 하늘에 하나, 땅에 둘, 즉 세 개의 태양을 보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태양만이 있고, 그것은 절대적인 단일성이며, 비할 데 없고 짝이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다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말의 요점은 그리스도의 실체가 진리의 태양, 즉 신성한 본질이 무한한 완전함과 속성으로 나타나고 빛나는 맑은 거울이었다는 것입니다. 신성의 본질인 태양이 나뉘거나 많아진 것이 아닙니다. 태양은 하나로 남아 있지만, 거울 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 태양이 이 거울 속에 나타나 보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의 진정한 의미

성령은 그리스도의 본질 속에 계시되고 나타난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입니다. 아들됨은 그리스도의 가슴(heart)의 지위이며, 성령은 그분의 정신(spirit)의 지위입니다. 따라서 신성의 본질은 절대적인 유일성이며, 비할 데 없고 동등하거나 유사한 것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고 확립됩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세 위격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종교의 기초는 어떤 마음도 상상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명제에 놓이게 될 것이며, 마음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파악될 수 없으며, 하물며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옷 입혀질 수는 더욱이 불가능하며, 순전히 환상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제 이 설명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의 의미를 명확히 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유일성을 확립합니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성령이란 하느님께서 넘치도록 베푸시는 은총과 하느님의 현시자에게서 발산되는 찬란한 광선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진리의 태양 광선이 집중되는 중심점이었으며, 이 강력한 중심점, 즉 그리스도의 본질로부터 하나님의 은총이 사도들의 본질인 다른 거울들에 비추어졌습니다.

성령의 강림에 대한 이해

사도들에게 성령이 강림했다는 것은 그 영광스럽고 신성한 은총이 그들의 본질에 빛과 광채를 비추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드나들고, 내려오고, 거하는 것은 육체의 특성이며 영의 특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드나들고 거하는 것은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실체에만 해당하며, 이성, 사랑, 지식, 상상, 생각과 같이 지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미묘한 것들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적인 실체들은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거하지 않고, 오히려 관계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마음이 습득하는 형태인 지식은 지적인 것이며, 그것이 마음에 들어오거나 나간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거울에 이미지가 반사되는 것과 같이 습득의 관계입니다.

따라서, 지적인 실체들이 들어오거나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고 확립된 이상, 성령이 오르거나, 내려오거나,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섞이거나, 거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태양이 거울에 나타나는 것처럼 나타날 뿐입니다.

성경 속 '성령'의 의미

또한, 성경의 특정 구절에서 '셩령이 언급될 때, 특정한 인물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일상적인 대화에서 어떤 사람이 '영혼 그 자체'이거나 '자비와 너그러움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초점은 '등불'이 아니라 '빛'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이후에 오실 약속된 분에 대해 요한복음 16장 12절과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제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라는 말씀이 진리의 성령이 영혼을 가지고, 들을 귀를 가지고, 말할 혀를 가진 사람 속에 구현된다는 것을 분명히 암시한다는 점을 주의 깊게 생각해보십시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성령'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우리가 '빛'이라고 말하면서 '빛'과 '등불'을 모두 의미하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생명의 문자란 누구인가?

생명의 문자(Letters of the Living)’는 바압(the Bab)께서 당신의 첫 18명의 추종자에게 부여한 칭호입니다. 바압은 페르시아 시라즈 출신의 상인이었습니다. 그분의 성함은 시이드 알리 무함마드 시라즈였으나, 세상에는 아랍어로(Gate)’을 의미하는 바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하이들은 그분이 과거 예언의 시대와 인류를 위한 새로운 성취의 시대 사이의 상징적인 문이었다고 믿습니다. 바압께서는 25세에 당신이 새로운 예언자이자하느님께서 나타내실 그분’, 즉 바하올라의 선구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

바압의 주장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은 젊은 셰이키학자인 몰라 후세인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많은 셰이키 신자들처럼약속된 분을 찾아 나섰습니다. 1844 5, 몰라 후세인은 마침내 시라즈 시에 이르러 바압을 만났고, 하룻밤 사이에 바압을 믿는 첫 번째 인물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18인 제자

몰라 후세인 이후, 1844 5월부터 7월 사이에 17명의 다른 이들이 각자 독자적인 탐구를 통해 바비 신앙의 창시자를 알아보았고, 바압께서는 그들에게생명의 문자라는 칭호를 부여하셨습니다.

생명의 문자(Letters of the Living)’는 아랍어로후루피 하이(Huruf-i-Hayy)’입니다. 아랍어 단어하이(hayy)’는 수비학적으로 18에 해당합니다. 18명의 생명의 문자와 바압 자신은 바비 시대의 첫바헤드 (Vahid, 통일체)’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수비학적으로 19와 일치합니다.

바압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의 현시자로 믿은 첫 사람들과 관련하여 특별히문자(letter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문자는원점(Point)’, 즉 하느님의 사도와, 하느님의 현시자들이 가져온 새롭게 번성하는 계시인활짝 피어나는 말씀과 문장들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합니다.

생명의 문자는 한 명의 여성과 열일곱 명의 남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다음과 같습니다:

  • 몰라 호세인 부쉬루이 (그의 칭호는 바볼밥, 문의 문’)
  • 무함마드 하산 (그의 형제)
  • 무함마드 바키르 (그의 조카)
  • 몰라 알리 바스타미
  • 몰라 쿠다 바크쉬 쿠차니 (후에 몰라 알리 라지로 개명)
  • 몰라 하산 바지스타니
  • 세이에드 호세인 야즈디
  • 미르자 무함마드 라우디 칸 야즈디 (또는 다키리 마사입)
  • 사이드 힌디
  • 몰라 마흐무드 쿠이
  • 몰라 잘릴 우루미
  • 몰라 아흐마드 입달 마라기이
  • 몰라 바키르 타브리지
  • 몰라 유시프 아르디빌리
  • 미르자 하디 (몰라 압돌 바합 카즈비니의 아들)
  • 미르자 무함마드 알리 카즈비니
  • 파티미 바라가니 (타히레, 순결한 분이라는 칭호를 받음)
  • 몰라 무함마드 알리 바르푸루쉬 (꼬두스, 가장 거룩한 분이라는 칭호를 받음)

 

 

바압의 사명

바압께서는 낡은 관습, 규범, 태도를 변화시키는 데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생애 동안 많은 저서를 남기셨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바얀(Bayan,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얀 1847-48년경, 즉 그분의 짧은 사명의 4년차에 거의 동시에 계시된 두 개의 다른 텍스트인페르시아어 바얀또는아랍어 바얀을 가리킬 수도 있고, 바압의 전체 계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페르시아어 바얀은 바비 시대의 모서(母書)로 여겨집니다. 이 책에서 바압께서는 여성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남녀 모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설명합니다. 바압께서는 동료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자비심을 가르치셨습니다. 지식과 과학을 추구하는 것은 지식, 행동, 신앙의 결합과 마찬가지로 찬양받습니다.

 

그들의 그늘 아래 피난처를 찾다

바압께서는 당신의 많은 저서에서생명의 문자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십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현시자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은생명의 문자에 대한 믿음을 수반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압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그분이 오실 때까지생명의 문자에게 의지하는 모든 사람은 안전할 것입니다.

바압께서는 당신의 이름뿐만 아니라생명의 문자의 이름으로도 예배의 장소를 지을 것을 권장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위는 영적이고 상징적입니다. 바압께서는 그들에게 바비 공동체 내에서 해석하거나 통치할 권한, 직책 또는 지속적인 임무를 부여하지 않으셨습니다.

 

바하올라 신앙의 길을 닦다

바압께서는 제자들에게 여행하며 당신의 종교를 전파하고, 당신 뒤에 오실 만세의약속된 분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들의 역할은 바압의 신앙과 새롭게 부활한 믿음 및 지식 탐구의 체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문자대다수는 바압의 대업에 충실했으며, 그중 12명은 바하올라의 계시가 탄생하기 전에 자신들의 믿음 때문에 순교했습니다.

바압의 순교 이후, 그분의 추종자들은 점점 더 바하올라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들은 바압의 가르침에서 목격했던 것과 동일한 정신과 지혜를 바하올라에게서 발견했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1863 4월까지 자신의 사명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한 명의생명의 문자만이 살아남아 바하올라의 대업을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몰라 바키르 타브리지입니다. 그는 셰이크 타발시 요새까지 바하올라를 동행했으며, 1848년 바다슈트 회의에도 참석했는데, 이 두 사건은 바하이 신앙 초기 역사의 기념비적이고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문자의 중요성

바얀에 따르면, ‘생명의 문자는 이슬람 성스러운 가문의 본질과 속성이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상응하는 시아파 이슬람의 18명의 주요 인물은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 그의 사위 알리, 그의 딸 파티마, 성스러운 가문의 11명의 이맘, 그리고 숨어있는 이맘을 중재하는 4명의 대리인 또는 창조, 유지, 죽음, 존재를 책임지는 4명의 천사로 구성됩니다.

바압께서는 또한생명의 문자진리의 태양을 향하고 있는 한 영적인 영향력을 갖지만, 등을 돌리면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모든 이가 바압께 충실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더 혹독한 시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의 문자중 한 명인 미르자 하디는 바비 신자들과 거리를 두다가 결국 신앙을 저버렸습니다.

대부분의생명의 문자는 바비 시대의 선두에 머물렀으며, 그들의 헌신에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바압께서는 첫 18명뿐만 아니라 당신의 모든 신자들을 가리켜 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인류가 새로운 문명, 즉 활력을 되찾은 사고방식에 동참하기를 환영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추구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마음가짐입니다:

 

 

바얀에 계시된 바에 따라 행동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분의 확증의 그늘 아래 낙원에 거하며, 하느님 앞에서 가장 숭고한 ‘문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질 것이다.”

바압

 

 

 

 

바압의 마지막 날들

 

선임자처럼 피에 굶주린 페르시아의 신임 수상은 1850년도에 바압을 처형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바압께서는 췌흐리끄에서 타브리즈로 다시 한번 옮겨지셨습니다. 그곳에서 나중에 순교를 당하신 광장 옆의 독방에 투옥 되셨습니다.

바압께서 독방으로 수감되어지던 중 한 젊은이가 군중을 헤치고 나와, 바압의 발 앞에 엎드리면서 “주님, 저를 주님으로부터 떼어 놓지 말아주세요.” 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바압께서 가시는 곳마다 따라 갈수 있도록 간청 드렸습니다. 바압께서는 “일어서거라. 나와 함께 할 것이니 걱정 말아라. 내일이면 너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네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니라. 라고 바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젊은이는 그의 친구 두 명과 함께 곧바로 체포되었으며, 바압과 그분의 서기가 투옥된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후에 이 젊은이는 아니스(Anís)로 알려졌습니다.

바압께서 타브리즈에 계셨을 때 아니스는 당신으로부터 하느님의 새로운 메시지를 들었으며, 바압을 따라 췌흐리끄로 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아니스의 마음속에는 너무도 강렬한 하느님의 사랑이 불타고 있었기에 그의 유일한 소망은 이 신교를 위한 자신의 희생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이상한 행동에 놀란 아니스의 의부는 그를 삼엄한 경비 속에서 집에 감금해 버렸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아니스는 기도와 명상으로 수 주일을 보내면서 그의 사모하는 임을 알현 할 수 있도록 간청했습니다. 그가 기도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그는 아주 특별한 환영(幻影)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부르며 앞에 서 계신 바압을 보았습니다. 아니스는 바압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바압께서는 “기뻐하라. 이 도시에서 나는 군중들 앞에서 묶여 매달리게 될 것이고, 적의 총탄의 희생양이 될 시간이 다가 오고 있구나. 나는 너 이외의 다른 사람과는 순교의 잔을 나누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와 한 이 약속은 꼭 지켜 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니스는 그의 사모하는 임과의 재회의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침착하게 기다렸습니다. 지금 그는 자신의 마음의 갈망인 분을 결국 알현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날 밤 바압께서는 기쁨으로 충만해 계셨습니다. 바압께서는 그분과 같은 감옥에 감금되었던 세 명의 충직한 추종자들과 아니스에게 기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내일은 나의 순교의 날이다. 너희 중 누군가가 지금 일어나서 그 손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나는 적들의 손에 의해 죽기보다는 벗의 손에 의해 죽기를 바라노라.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존귀한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끊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그들은 묵묵히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니스는 별안간 벌떡 일어나서 바압께서 명령하신다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압께서 선언하시길 “나의 바람대로 따르려고 일어난 이 젊은이는 나와 함께 순교를 하리라. 나와 함께 순교의 왕관을 나누기 위해 나는 그를 선택하였느니라.

 

다음날 이른 아침인 185079일에, 바압께서 서기에게 말씀을 전달하시던 중 한 관리가 갑자기 그분들의 대화를 가로막았습니다. 바압께서는 다음과 같이 그 관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말하려고 하던 모든 것을 마치기 전에는, 세상의 어떤 힘도 나를 가로막을 수 없느니라. 비록 모든 세상이 나에게 대항하여 무장할지라도,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내가 의도하는 마지막 말의 완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니라. 그러나 그 관리는 바압의 말씀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관리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서기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 바압께서는 그분의 감옥에서 타브리즈 시에서 가장 저명한 성직자들의 집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그들은 그분의 형 집행서에 주저함 없이 서명하였습니다.

 

그 날 늦은 아침에 그분의 처형을 보러 거의 만 명 정도의 군중이 운집한 광장으로 바압께서는 다시 호송되셨습니다. 바압께서는 그분의 처형을 명령받은 연대의 대장인 삼 칸(Sám Khán)에게 인도 되셨습니다. 하지만 삼 칸은 바압의 행동에 지대하게 영향을 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의 행위가 하느님의 격노를 부를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압께 “저는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는 아무런 나쁜 의도도 품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의 성업이 진실한 신앙이라면, 저를 당신의 피를 흘리게 하는 의무에서 저 자신을 자유롭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바압께서는 너의 명령을 따르라. 만약 너의 의도가 진실하다면, 강력하신 분께서 분명 너의 혼란을 없애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삼 칸은 그의 병사에게 벽에 쇠못을 박고 2개의 밧줄을 매어 놓으라고 명령했고, 그 밧줄에 바압과 아니스가 묶여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연대 병력은 250명씩 세 열로 정렬했습니다. 차례차례 각각의 열은 사격을 했습니다. 750총구의 연기가 사라지고 난 후에 믿기 어려운 광경을 목격하고 군중들은 놀라워했습니다. 아니스는 다치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로 그들 앞에 서 있었고, 바압께서는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 총알들은 단지 그들이 묶인 밧줄만을 끊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극도로 흥분하여 바압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바압께서는 그분의 감옥에서 서기와의 중단된 대화를 끝맺으시며 앉아 계신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바압께서는 “나의 대화는 끝이 났다. , 이제 너희의 의도를 완성하기 위하여 집행을 계속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건에 경악한 삼 칸은 그의 병사들이 다시 총을 쏘는 것을 거절하고, 그의 군사를 그 형장에서 철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형의 집행을 위하여 다른 연대가 불려 왔고 다시 한번 바압과 아니스는 형장에 묶여 매달리게 되었으며, 그 군인들의 총은 발사되었습니다. 이번에 총알들은 과녁에 명중되었습니다. 바압과 아니스의 시신은 산산이 흩어졌지만 그분들의 얼굴은 거의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그 연대가 사격을 하려 준비할 때 바압께서는 바라보는 군중에게 다음의 마지막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방종한 세대여, 너희들이 나를 믿었다면, 너희들 보다 훨씬 지위가 높은 이 젊은이처럼 나의 길에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을 것이니라. 나를 알아볼 그 날은 올 것이나, 그 날은 내가 너희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느니라.

 

 

집단입신(Entry by Troops)

 

집단입신(Entry by Troops)은 특정 지역에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바하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 세계 대다수가 바하이 신앙으로 대규모 개종하는 것의 서막이 되는 점진적인 과정으로 간주됩니다. 세계정의원(The Universal House of Justice)은 집단입신이 현재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과정이라고 밝혔으며, 바하이 공동체가 이를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도록 격려해 왔습니다.

 

용어의 기원

1868년 이란의 샤(Shah)를 위해 계시된 서신에서 바하올라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집단입신'의 이미지에 비유하여 사용하셨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저 너머의 세계에 그들을 위해 마련된, 전지전능하신 그들 주님의 자비라는 정선된 포도주를 맛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분명 비난을 멈추고 오직 이 청년(바하올라)의 기쁨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헛된 공상과 망상의 손으로 짠 어둠의 장막 뒤에 나를 숨겼습니다. 머지않아 하느님의 눈처럼 하얀 손이 이 밤의 어둠을 찢어 길을 열고 그분의 도시로 향하는 거대한 문을 열 것입니다. 그날에 사람들은 떼를 지어 그곳으로 들어갈 것이며(On that Day shall the people enter therein by troops), 이전에 비난하던 자들이 외쳤던 말을 외칠 것이니, 태초에 나타났던 것이 마침내 명백해질 것입니다."  <만군의 주님의 소환>

 

쇼기 에펜디는 1953 7월에 쓴 서한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10년성전(Ten Year Crusade)의 첫 몇 달 동안 공동체의 노력을 통해 새로운 바하이들이 유입된 것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더욱이 이 흐름은 압돌바하께서 예언하신 그날, 즉 다양한 국가와 인종의 사람들이 바하이 세계로 집단으로 입신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그날의 도래를 예고하고 앞당길 것입니다. 올바른 관점에서 볼 때, 그날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시간의 서막이 될 것입니다. 그 시간에는 바로 그 국가들과 인종들의 대규모 개종이, 중대하고 어쩌면 재앙적일 수도 있으며 아직은 희미하게나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련의 사건들의 직접적인 결과로, 갑작스럽게 신앙의 운명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세계의 균형을 뒤흔들며, 바하올라 신앙의 수적 힘과 물질적 능력, 그리고 영적 권위를 천 배로 강화할 것입니다."

 

초기 사례

1963 10월 서한에서 세계 정의원은 집단입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압돌바하의 신성한 계획의 두 번째 시대의 문턱에 서 있으며, 대업의 전초 기지들이 지구의 가장 먼 곳까지 세워졌고, 사부님(압돌바하)께서 친히 약속하신 그 집단입신의 시작을 이미 목격했습니다."

 

세계정의원은 또한 1964, 1965, 1966년에 발표된 서한들에서 10년성전 기간 동안 집단입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이후 수호자(Guardian)의 봉직 기간 동안 집단입신이 일어난 곳이 아프리카였다고 명시했습니다.

1971년 세계정의원은 집단입신이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1974년에는 지방신성회(Local Spiritual Assemblies)의 발전이 신앙이 집단입신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1976년 세계정의원은 아프리카의 바하이들에게 대륙에서 집단입신 과정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1981년 세계 정의원은 아프리카가 집단입신을 경험했다고 명시했으며, 1987년에는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집단입신이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1989년 세계 정의원은 볼리비아, 방글라데시, 아이티, 인도, 라이베리아, 페루, 필리핀, 대만을 집단입신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로 지명했습니다.

 

체계화

1995년 세계 정의원은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 내에서 그 과정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공식화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신앙의 영웅기대의 영광스러운 사건들 이후, 세계 민족들이 하느님의 대업으로 집단으로 입신하는 일은 쇼기 에펜디의 봉직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 처음 발생했으며, 그 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점차적으로, 해당 지역의 바하이 공동체들은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으며, 이 많은 수의 신자들을 기능하는 공동체로 모으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강력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법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을 돕고, 다른 나라의 바하이들이 이 과정을 시작하고 유지하도록 돕고, 이처럼 도전적인 개념을 필연적으로 둘러싸고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집단입신 촉진(Promoting Entry by Troops)'에 관한 자료집이 발간되었습니다. 거기에 기술된 원칙과 접근법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것은 집단입신이 수년간 현실이었던 지역이든, 아직 그 징후가 나타나지 않은 지역이든, 모든 바하이 선교사와 공동체에 의심할 여지없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 이는 개별 신자들에게 이 과정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확신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바하이 공동체들이 이 도약을 위해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스스로를 준비하고, 그 발생을 간절히 기대하며, 그 시작을 촉진할 조치를 취하고, 그 성장을 영속시킬 방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세계 정의원은 또한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가 그 과정을 진전시키는 데 체계적으로 접근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1996년 레즈완(Riván)에, 전 세계 바하이들은 하나의 주요한 성취, 즉 집단입신 과정에서의 중대한 진전을 목표로 하는 범세계적 사업에 착수할 것입니다. 이는 개별 신자, 기구, 그리고 지방 공동체의 활동과 발전에서 현저한 진전을 통해 달성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의 진전이 이 긴밀하게 연결된 세 주역 모두의 발전에 달려 있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합니다. 향후 4년 동안은 개개인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효과적인 선교 활동이 극적으로 급증하는 것을 목격해야 합니다. 수천, 수만의 신자들이 대업을 가르치는 일에 꾸준함을 보이고, 그들 기관의 계획과 공동체의 노력을 지원함으로써 신앙의 활력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의미 있는 대화  

'의미 있는 대화'란, 두 사람 이상이 만나 피상적인 이야기를 넘어 깊이 있는 주제를 나누며 상호 이해를 높이고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하이 신앙의 핵심적인 실천 중 하나로, 세계정의원(Universal House of Justice)은 다른 이들과 교류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필수적인 방법으로서 이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대화는 진정한 소통을 통해 이해와 화합, 영적 성장을 이루려는 바하이 신앙의 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목적 및 중요성

세계정의원은 바하이 공동체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어 의미 있는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2021년 12월 30일 메시지에서 세계정의원은 의미 있는 대화를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영적 통찰력을 키우는" 실천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대화는 스터디 서클, 기도 모임, 봉사 프로젝트와 같은 체계적인 활동을 보완하는 중요한 요소이며, 더욱 개인적이고 생동감 있는 참여를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세계정의원은 의미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겸손, 열린 마음, 그리고 진심으로 배우고 경청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히 바하이 가르침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 참여하는 모두가 공통의 가치와 비전, 통찰을 함께 탐구하는 협력의 과정입니다.

 

의미 있는 대화의 핵심 특성

  • 목적에 뿌리를 둔 대화: 정의, 화합, 인류의 단일성 등 인류의 정신적·물질적 발전에 기여하는 목적의식을 갖고 대화합니다.
  • 상호적이고 존중하는 태도: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진정한 상호 이해의 장을 만들어갑니다.
  • 자연스럽고 정형화되지 않은 대화: 공식적인 형식이 필요하지 않으며, 집, 직장, 공공장소 등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 변화의 잠재력: 일상에서 나눈 사려 깊은 한마디가 깊은 성찰과 영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닙니다.

 

바하이 가르침에서 얻은 통찰

여러 바하이 문헌은 의미 있는 대화가 지닌 현실적이고 영적인 측면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개인이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고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도록 돕는 영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한 예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독특한 대화'라는 개념은 바하이 신자들이 사랑, 정의, 보편적 화합의 원칙을 바탕으로 대화에 임함으로써 특별한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자들을 위한 격려

세계정의원은 신자들이 확신을 갖도록 격려합니다. 의미 있는 대화는 바하이의 비전을 나누는 쉽고 즐거운 방법이며, 이는 계획되지 않은 우연한 만남 속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화의 깊이와 진정성은 즉각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실제 적용

의미 있는 대화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일상의 만남: 상점, 직장, 사교 모임에서의 가벼운 대화가 깊이 있는 질문이나 영적인 관점을 나누는 기회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가정 방문: 가정 방문은 깊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특히 좋은 환경을 제공합니다.
  • 핵심 활동과의 연계: 스터디 서클과 같은 핵심 활동이 공동체 참여를 통해 새로운 이들을 이끈다면, 의미 있는 대화는 일대일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이해를 깊게 하고 유대를 강화하며 이를 보완합니다.

 

바하이 공동체 건설 과정의 핵심이 체계적인 활동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미 있는 대화는 이를 보완하는 자발적이고 유기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는 체계적인 활동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며, 신앙의 성장이 역동적이면서도 진실한 인간관계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합니다.

신성한 원조의 힘

 

1. 성령의 본질과 역할

 

성령은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생명 정맥 보다도 더 가깝다"고 언급되며, 개인인의 변형, 신앙의 정신, 그리고 신성한 계획의 구현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 성령은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

"신성한 본질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성령은 하느님과 그분의 피조물 사이의 중재자로 언급됩니다."

• 신성한 현현의 내적 실재:

성령은 "하느님의 현현의 내적 실재"이며, 이는 바하올라뿐만 아니라 모든 신성한 현현에게도 해당됩니다. 이 내적 실재는 "모든 창조물의 지탱과 버팀목"이며, "모든 원자의 심장 속에서 진동합니다."

• 다양한 표현의 통일된 실재:

인간의 영혼, 마음, 정신, 시력, 청력은 "다양한 도구로 인해 동일한 실재의 다양한 표현"인 것처럼, 신성한 현현의 실재 또한 "봉사나 수행하는 행동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단일 실재"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때때로 하느님의 뜻, 사랑, 은혜, 바하올라 자신 또는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 세계를 새롭게 하는 빛:

성령은 "순수한 거울이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은혜를 전달하는 것처럼, 실재의 태양으로부터 신성한 빛을 중재하여 성화된 실재들, 즉 자신을 정화하거나 욕정과 욕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영혼들에게 그 빛을 줍니다." 이 빛이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세상은 새로워지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됩니다."

• 힘의 증강:

바하올라의 육체적 승천 이후, "하느님의 현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은 육체적 형태에 의해 다소 제한되었으며, 그분의 육체적 승천 이후에는 그 힘이 엄청나게 증강됩니다."

 

 

2. 신성한 원조의 힘과 확증 

하느님의 원조가 개인과 공동체의 노력을 어떻게 강화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지.

"신성한 원조의 힘"은 우리가 "대업을 돕기 위한 노력에 성령이 제공하는 봉사"입니다.

 

• 개인의 변혁과 대업의 발전의 필수 요소:

압돌바하께서는 "바하올라의 11번째 원칙은 성령의 힘이며, 오직 이 힘으로만 영적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강조하며, 이 힘 없이는 "바하올라가 가져온 사회 계획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사회적 계획의 성공은 개인의 영적 변혁에 달려 있습니다.

• 모든 위대한 업적의 원천:

"모든 위대한 예술과 과학 작품은 성령의 힘에 대한 증거입니다." 또한, 이 성령은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은 성령의 축복을 받고 그 힘을 의식하며, 개인적인 변혁과 인류 봉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 확증의 특징:

확증은 "향기로운 확증," "," "격류," "모든 것을 에워싸는," "끝없는," "영원한," "지속적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천사들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 "성령의 이 능력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확증은 "하늘에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지속적으로 넘쳐흐르는" 힘입니다.

• 확증의 효과:

확증은 교도자들을 "풍부하게 확증"하고 "웅변적이고 유창하게" 만들며,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고, "성약에 굳건한 사람들을 돕고," "신앙의 발전을 제공하며," "기업이 번성하고 발전"하도록 합니다. 확증은 "모든 지상의 세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 "나라들이 영광의 정점에 오르도록" 하며, "시든 땅에 새로운 생명"을 주고, "모든 이해하는 마음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개인을 변화시키고," "감각적 욕망의 포로들을 해방"시키고, "신성한 향기를 퍼뜨리고," "인류의 일치를 지지하며,"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3. 신성한 원조를 얻는 세 가지 핵심 요소

신성한 확증과 원조를 얻기 위한 세 가지 핵심적인 접근 방식

 

3-1. 자신의 약점과 한계 간과하기  

개인의 약점과 무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봉사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 주님의 능력에 의지: "자신의 약점과 허약함에 귀 기울이지 말라. 주 하느님의 무적의 능력에 시선을 고정하라." 압돌바하께서 "자신의 약점과 무력함을 보지 말고, 성령의 확증에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않기: "우리 각자는 실패를 되돌아보면 자신이 가치 없다고 느끼고 낙담할 것이며, 이러한 감정은 우리의 건설적인 노력을 좌절시키고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 자신이 단지 도구임을 인식: 성공은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확증" 때문입니다. "교도자의 끊임없는 기도는 자신이 정화되어 성령이 그로 하여금 학생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도록 말하거나 행동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 겸손과 신뢰의 중요성: "그들 중 어느 누구라도 단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성과가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일은 끝나고 그의 몰락이 시작됩니다."

• 다른 사람의 단점 간과: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지 말고" "용서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라." 이는 "사랑과 조화를 증진하고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어떤 거절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3-2. 성약에 대한 의존  

말씀에 있는 하느님의 약속과 보증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하느님의 원조에 대한 확신: "진실로 우리는 우리의 영광의 영역에서 너희를 보고 있으며, 우리의 대업의 승리를 위해 일어나는 자는 누구든지 높은 회중의 군대와 우리의 은혜로운 천사들의 동반으로 도울 것이다."

• 확고한 성약에 대한 확신: "가장 큰 확신을 가지십시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이 성약에 굳건한 자들을 모든 일에 그분의 확증과 은혜로 도우실 것입니다."

• 승리의 씨앗: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육체적으로 약하고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뿌린 "확증의 씨앗" 덕분에 결국 승리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이끌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노력 또한 미래의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 무한한 천상의 힘의 원천: "공동체가 끌어낼 수 있는 천상의 힘의 미개척 원천은 그 잠재력에 있어서 무한하며, 필요한 매일의 노력을 기울이고 필요한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활력을 주는 영향력을 주저하지 않고 쏟아낼 것입니다."

• 흔들리지 않는 결단과 노력: "바하올라의 확증은 여러분이 흔들리지 않는 결단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여러분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일어선다면, 여러분에게 쏟아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3. 행동  

행동은 신성한 확증을 끌어들이고 개인의 특성을 변화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 확증의 조건: "이 날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의 확증이 신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사람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교도하는 일이 중단되면 이러한 확증은 완전히 끊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교도하지 않으면 원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명상, 학습, 그리고 행동의 순환: 효과적인 교도를 위한 단계는 "기도, 명상, 거룩한 말씀의 학습, 그리고 행동"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에 있어서 교도자가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희생의 중요성: "신성한 확증을 끌어들이는 자석은 자기희생입니다." 시간, , 그리고 개인적인 희생은 신성한 축복과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희생의 정도는 확증의 정도입니다."

• 지속적인 노력: "아무리 우리의 자원과 능력이 제한적일지라도, 여러분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면, 여러분의 노력은 신성한 확증에 의해 강화될 것이라는 생각을 통해 완전한 자신감을 얻어야 합니다."

• 세상의 고난이 기회: "세상을 괴롭히는 재앙과 절망의 증가하는 조류에 낙담하지 않고 인내해야 합니다. 이는 세상의 통일과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길을 신비롭게 포장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는 인류가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바하올라의 궁극적인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 즉각적인 행동의 촉구: "잃을 시간이 없습니다. 주저할 여지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빵에 굶주려 있습니다. 무대는 준비되었고, 확고하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시작되었고, 매일 추진력을 얻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힘이 신비롭게 그 실행을 돕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일어나 스스로 그러한 주장의 진실을 확인하십시오. 인내하는 것은 궁극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보장합니다."

 

바하이 신앙에서 성령의 중요성과 신성한 원조가 개인과 공동체의 삶에 미치는 심오한 영향을 강조합니다. 이 강연은 단순히 교리적인 설명을 넘어, 신자들에게 봉사, 자기희생,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통해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강력하게 독려합니다. 자신의 약점을 간과하고, 신성한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행동하는 이 세 가지 원칙은 모든 바하이 신자가 영적 삶과 봉사에서 신성한 확증을 경험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합니다.

 

 

2008년 체포되어 2010년 1월 12일 재판이 시작된 7명의 Yárán 멤버, 모두 테헤란 출신입니다. 사진은 체포되기 몇 달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Yárán 야란

 

Yárán 야란의 의미는 '친구들'입니다. Yárán 야란은 이란의 국성회 (National Spiritual Assembly of Iran)가 해체된 이후, 이란 내 바하이들의 사회적 및 영적 필요를 돌보기 위해 1984년에 설립된 임시 위원회였습니다.

 

1983년 이란 검찰총장은 바하이 행정 기구를 불법으로 규정했고, 이에 따라 이란 전국 신성회는 법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바하이들은 1984년 Yárán 야란의 설립을 승인받았는데, 이는 이란 내 바하이교도들의 영적, 사회적 필요를 돌보는 책임을 맡은 비공식 임시 위원회였습니다. Yárán  야란은 초기에 3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이란 당국 또한 이 단체의 활동과 바하이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21일, 이란 정보부 요원들은 테헤란의 한 바하이의 자택에서 열리던 Yárán 야란 회의를 급습했습니다. 요원들은 영장 없이 위원회 위원 3명과 현장에 있던 다른 바하이 2명을 체포했습니다. 이들은 같은 해 12월 17일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독방에 구금되었습니다. 1992년 7월에는 위원회 위원이었던 하산 마흐부비가 의심스러운 정황의 뺑소니 사고를 당했고, 그는 이 부상으로 사망했습니다.

 

2008년 당시 Yárán 야란은 7명의 위원으로 확대되었으나, 그해 정부가 이 단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위원 전원이 체포되었습니다. Yárán 야란은 이 판결에 따라 해체되었고, 위원들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들은 2018년에 석방되었지만, 2022년 7월 전 위원 중 2명이 다시 체포되어 10년의 징역형을 추가로 선고받았습니다.

9년 계획 활동의 틀 속에 함께 하는 :봉사의 여정


바하올라께서는 인류를 치유하실 신성한 메시지를 가져오셨으며, 우리는 그 고귀한 메시지의 수탁자들입니다. 압돌바하께서는 신성한 계획의 서한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모든 영혼을 품어 안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제시하신 비전은 오늘날 우리가 세계 어디를 가든 사랑이 넘치고 성장하는 공동체를 만나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하이 신앙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압돌바하께서는 계시된 서한들을 보내시는 동시에, 가장 취약한 이들, 즉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친히 돌보셨습니다. 당시 공동체는 작고 자원이 부족했지만, 그분께서는 마치 지혜로운 농부가 흉년을 대비해 곡식을 비축하듯 다가올 어려운 시기를 예견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수호자께서 설명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건설과 파괴라는 두 가지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낡은 세계 질서는 허물어지고 있으며, 그 파괴의 속도에 맞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이 건설의 과업은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으며, 신속하고 헌신적인 대응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인류를 대신하여, 그리고 인류를 위하여 이 사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신성한 계획의 전개와 봉사의 길

세계정의원께서는 2021년 12월 30일 메시지에서 9년 계획의 틀 안에서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시며, 특히 "불붙은 영혼들"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신성한 계획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 걸음씩 그 비전을 현실로 옮겨갈 수 있을까요?
그 핵심에는 ‘봉사의 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 목적을 성취하는 길을 안내하십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식, 기술, 올바른 태도, 그리고 영적 자질이 필요하며, 이 모든 것은 그분의 말씀 속에서 발견됩니다. 우리가 이 길을 걷고 노력할 때, 의식은 고양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첫 봉사의 실천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여정에서 부모의 책임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수탁자이며, 하느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녀가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인식은 영적 교육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교육을 통해 자녀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모든 영적 여정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관계는 단순한 거래적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한 영적 관계입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태도가 그 본질입니다.

 

모든 세대를 위한 봉사: 주니어 유스에서 평생의 헌신까지

주니어 유스는 종종 사회로부터 오해받지만, 그들은 엄청난 에너지, 열정, 호기심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인도가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은 사회가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그들을 인도하고 지지할 때, 그들은 이 중요한 전환기를 더욱 긍정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청년기로 나아가며 봉사의 길 위에서 그들의 영적, 지적 역량은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봉사의 길은 특정 연령이나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어떤 개인이 인류 전체를 혼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섬기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꾸준한 봉사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바하이 단식은 일정 나이가 지나면 의무에서 제외되지만, 봉사의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도전과 극복, 그리고 체계적인 노력

이 길은 단순하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닙니다. 우리는 삶의 다양한 환경과 도전들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봉사를 삶의 중심에 두면, 우리는 그에 따라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게 됩니다. 기도, 명상, 지속적인 성찰을 통해 우리는 이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이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많은 유혹과 산만함으로 가득합니다. 때로는 그것들이 매력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어 식별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선택에서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들은 유연하고 지혜롭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룰 때, 우리는 주변의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발견하게 됩니다. 봉사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도울 때, 우리의 신념 또한 더욱 굳건해집니다. 비록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친구들이 함께 일으켜 세워줄 것입니다. 이처럼 함께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인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이 과업은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일이지만, 결코 다음 세대에게만 미룰 수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체계적이어야 합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반성하고, 조정하고, 배우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쁨으로 가득한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개인에서 공동체로, 유기적 성장으로

봉사는 개인의 실천으로 시작하지만 곧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장되며, 결국 집단적인 삶의 양식으로 발전합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제도들은 우리에게 인도를 제공하고, 우리는 제도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습니다. 한국 바하이 공동체의 경우, 신앙이 이 땅에 뿌리내린 지도 어느덧 105년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유기적(organic)’이라는 개념을 때로 ‘느리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물이 처음 잎을 틔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공동체의 성장도 초기 단계에서는 더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시점이 되면 폭발적인 성장이 일어나듯, 우리의 노력 또한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빛을 밝히는 우리의 역할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해가 진 뒤 글을 읽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눈이나 마음이 아니라, 시대 자체의 어둠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하올라께서 남기신 말씀에 의지해 빛을 밝혀야 합니다. 겸손한 학습자의 자세로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전하려는 것은 단지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신성한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기쁨과 평화의 안식처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우리 자녀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청년들과 그들의 미래를 함께 걱정해야 합니다.
세계정의원께서는 9년 계획을 통해 모든 클러스터에서 우리의 노력을 강화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우리는 바하올라께서 주신 치유의 메시지를 가슴에 품고, 압돌바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지혜를 본받아, 9년 계획이라는 활동의 틀 안에서 봉사의 길을 함께 걷고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고 공동체와 함께, 우리는 사랑과 연합으로 성장하는 공동체를 세워가고 있으며,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등불을 밝혀 나가고 있습니다. 이 여정은 "불붙은 영혼들"의 헌신과 열정으로 더욱 빛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꾼 그 밤바압 선언일을 기념하며

 

전 세계 바하이들에게 5 23일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닙니다. 이날은 새 시대의 여명을 알리는, 영적 혁명이 시작된 날입니다.

 

영적 혁명의 여명

1844년 해 질 무렵, 이란 쉬라즈 성곽 입구에 몰라 호세인이라는 한 구도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몇 시간 뒤, 자신이 인류의 새로운 영적 시대를 목격하는 첫 번째 증인이 되리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가 쉬라즈의 한 조용한 저택에서 나눈 대화는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 밤은 장엄한 의식이나 군중이 아닌, 깊은 고요와 친밀함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몰라 호세인은 오래전부터 약속된 영적 인물을 찾아 페르시아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시라즈에 도착한 그는 초록 터번을 두른 젊은 이로부터 집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초록 터번의 젊은이와 몰라 호세인은 해가 진 뒤 깊은 밤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몰라 호세인은 신중하고도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고, 초록 터번의 젊은이는 분명하고 위엄 있게 답하였습니다. 그 대화 속에서 몰라 호세인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의 빛을 느끼게 됩니다. 마침내 이 젊은 이가 모든 종교에서 약속되었으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까엠(Qáim 약속된 주- 숭고한 메시아)이며, 머지않아 오실 위대한 하느님의 사자를 준비하기 위한 사명의 바압(Gate )’이심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나는, 나는,
바로 그약속된 자이니라!
바로, 너희가 천 년 동안 그 이름을 언급해 왔고,
그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 너희들이 소생되었으며,
너희가 『그분』의 출현을 목격하기를, 그리고 너희가 하느님께서 그분 현시의 시기를 앞당겨 주시기를 갈망해 왔던 바로 『그분』이니라.”

 

그 조용한 고백은 인류의 새로운 영적 시대, 바하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바압은 누구신가?

바압께서는 1819년 쉬라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상인으로 살아가셨지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영적 통찰력과 순결한 성품으로 주목받으셨습니다.  1844, 바압께서는 자신의 신성한 사명을 세상에 밝히시며, 인간 영혼의 정화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인류의 일체성, 남녀의 평등, 모든 종교의 본질적 통일성, 그리고 진리의 자주적 탐구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명은 단지 그 시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그분 (바하올라)”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압의 가르침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수많은 이들이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의 빛은 기존의 권력과 제도를 위협하는 존재로 비쳐졌고, 이에 따라 많은 바비(바압을 따르는 이)들이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천 명이 투옥, 고문, 심지어 처형당했으며, 바압께서도 결국 1850, 서른한 살의 나이에 순교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생애 속에서도 바압께서는 방대한 양의 성스러운 경전을 남기셨으며, 이 글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영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율법과 교리를 넘어 사랑, 아름다움, 진리, 그리고 통합의 언어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짧았던 생애 속에서도 그분의 인류 융합에 대한 확고한 비전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영감을 줍니다.

 

선언일을 기념하며

매년 5 23, 해가 진 뒤 바하이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바압께서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신 그 밤을 기립니다. 특별한 형식이나 장식은 없습니다. 대신, 조용한 공간에서 바압과 몰라 호세인 사이의 역사적인 만남을 되새기며, 기도와 경전 낭독, 깊은 묵상 속에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그 조용한 밤, 두 사람은 운명과 신앙, 진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사람은 열린 마음으로 진리를 구했고, 다른 한 분바압께서는계시로서 응답하셨습니다.

그날 밤의 선언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살아 움직이는 순간입니다.

그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밤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원영적 사고와 인샬라

'절대 긍정'의 힘 : 바하이신앙의 빛나는 수용의 길

 

 

삶은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우리는 때때로 큰 도전과 좌절, 그리고 깊은 고통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시기에는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적인 길을 걷는 이에 있어, "완전한 긍정의 마음"을 키우는 것은 단지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성장하고 하느님과 연결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융합과, 봉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바하이 신앙은 이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기르는 데 깊은 통찰을 줍니다. 바하이 신앙은 고통을 무시하거나 없는 척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데 기반을 둔, 강하고도 따뜻하며 밝고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가르칩니다.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신성한 의미와 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하이 신앙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일어나며,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 당장은 알 수 없어도 결국에는 의미와 목적이 있다는 믿음입니다.

어려움은 벌이 아니라, 마치 금이 불을 통해 정화되듯, 우리의 영혼을 더 맑고 강하게 만드는 기회로 여겨집니다.

 

“나의 재난은 나의 섭리(攝理)이니, 겉으로는 불이며 복수이로되 속으로는 빛이며 자비이니라. 거기로 서둘러 가야만, 네가 영원한 빛이 되며 불멸하는 정신이 되리라. 이 말이 너에게 내리는 나의 명령이니, 이를 반드시 지키어라”

— 숨겨진 말씀들, 아랍어 51

 

이 인상적인 구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재앙"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줍니다. 겉으로 보기엔 파괴적이고 두려운 일(: "불과 복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영적인 깨달음과 자비("빛과 자비")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련을 하느님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경험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가진 영적인 가능성("영원한 빛이 되라")에 더 가까워지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런 관점은 지금 당장의 고통보다는 그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더 깊은 의미와 유익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번창할 때 너그럽고, 어려울 때 감사하라.”

— 바하올라 선집

 

"시련 중에 감사하라"는 말은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깊은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우리가 시련이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제공하신 성장의 기회라고 믿는다면, 감사는 가능해집니다. 이 감사는 이해를 초월하는 내면의 평화, 즉 우리가 하느님의 무한한 보살핌 안에 안겨 있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하느님 안에서 만족할 때, 우리는 모든 결과를 통제하거나 모든 고난에 저항하려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시련조차도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 마련된 것임을 보게 됩니다.

절대 긍정의 정신은, 삶의 모든 일(고난이든 기쁨이든)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지혜와 자비의 표현이라는 깊은 확신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영적인 통찰과 하느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의 자세입니다.

 

생애의 완전한 본보기이신 압돌바하께서는, 박해와 유배, 투옥 속에서도 이 원칙을 우아하게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기쁘고 평화로우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께 향하십시오. 그분은 당신의 조력자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인도하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재난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훈련을 위한 것입니다. 어려움이 당신에게 닥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교육을 위한 것입니다.”

— 압돌바하, “압돌바하 선집인용

 

여기서 우리는 긍정의 영적 논리를 보게 됩니다. 고난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느님의 교육과 자비를 꿰뚫어 보는 높은 차원의 인식을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신앙에서 나오는 명확함입니다.

 

바하이 말씀에서는 신자들에게 일상의 삶 속에서도 기쁨과 평온의 빛을 비추라고 거듭 강조합니다. 바하올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융합의 빛은 매우 강력하여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출 수 있느니라.”

바하올라 선집” p. 286

 

여기서 말하는 융합은 외적 융합뿐 아니라 내적 융합, 즉 마음과 생각, 믿음이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하나 되는 상태를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근거한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 줍니다.

 

또한, 절대 긍정은 개인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가득 찬 마음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빛을 전하고 공동체에 힘을 실어줍니다. 불확실하거나 시련이 거듭되는 시기일 수록, 평온하고 긍정적인 태도는 희망의 등불이 됩니다.

 

 

절대 긍정을 실천하는 방법

바하이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이 특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 매일 기도하며 초연함과 믿음을 구합니다.
  • 경전을 묵상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를 되새깁니다.
  • 공동체의 협의에 참여하며,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합니다.
  • 기쁨으로 봉사하며, 한계를 보기보다는 가능성에 집중합니다.

 

 

변형의 힘

하느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어려움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하는 일은 어려움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안을 평화로, 쓰라림을 감사로, 절망을 희망으로 대체합니다. 그것은 개인이 인생의 불가피한 폭풍을 단지 인내심으로만 헤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지된 재앙 속에 숨겨진 궁극적인 빛과 자비를 확신하며 빛나는 영혼으로 헤쳐나가게 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에 기초한 이 "절대적 긍정성"은 엄청난 힘과 회복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깊은 기쁨의 원천이 되어, 신자들이 하늘이 가장 어두워 보일 때조차도 진정으로 햇살을 찾을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이 신앙이 가진 <변형의 힘>입니다.

바하이 신앙의 9년 계획 (2022-2031)에 대한 이해

 

바하이 신앙의 9년 계획은 2022년부터 2031년까지 바하이 신앙의 발전과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계획입니다. 세계 정의원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수립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1. 9년 계획의 목표와 이전 계획과의 연관성은 무엇인가요?

9년 계획은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의 성장과 발전을 더욱 빠르게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전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기존 클러스터(지역 공동체) 내 성장 과정을 강화하고, 바하이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며, 사회 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전 계획들을 발전시킵니다. ,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장기적인 전략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2. '클러스터'란 무엇이며, 이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바하이 신앙에서 클러스터는 공동체 성장의 관점에서 지리적으로 연결된 바하이 가정들의 그룹을 의미합니다. 9년 계획은 이 클러스터 안에서 성장과 공동체 형성을 촉진하는 데 집중합니다. 현재 22,000개가 넘는 클러스터를 재편하고 확대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기존 공동체를 강화하는 전략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3. 9년 계획은 4년과 5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단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전체적인 목표는 동일하지만, 각 단계는 전략적으로 다른 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64월까지의 첫 4년은 기반을 다지고 기존 구조를 강화하며, 신앙을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합니다. 이후 5년은 첫 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해를 깊이 있게 하고,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계획의 진행 상황을 고려한 논리적인 단계별 접근 방식입니다.

 

4. 연수원은 9년 계획의 성공에 어떻게 기여하나요?

연수원은 바하이 신앙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연수원 교육을 통해 개인들은 공동체 건설과 사회 변화 활동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합니다. 특히 현대 사회의 문제와 관련된 바하이 가르침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5. 계획에 유연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9년 계획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와 사회적 환경에서 실행되기 때문에 유연성이 필수적입니다. 예상치 못한 도전과 기회가 발생할 수 있는데, 유연한 접근 방식은 각 지역의 필요와 상황에 맞게 계획을 조정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계획의 효과성을 높이고 다양한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돕습니다.

 

6. 국가 성장 위원회(NGC)는 어떤 역할을 하며 왜 중요한가요?

국가 성장 위원회는 국가 차원에서 9년 계획의 실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에 조언, 지도, 지원을 제공하여 계획 목표 달성을 위한 일관되고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보장합니다. 세계 정의원의 지침과 지역 공동체의 활동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계획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7. '세 번째 이정표'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9년 계획의 문서에서 '세 번째 이정표'가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클러스터 내에서 상당한 성장과 발전 수준을 나타내는 바하이 공동체 내부의 지표로 추정됩니다. 이 이정표에 도달하는 것은 계획의 전반적인 목표를 향한 중요한 진전을 의미하며, 단순히 숫자가 늘어나는 성장보다는 공동체의 역량이 성장했음을 보여줍니다.

 

8. 신자 수 증가 외에 공동체 구축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러한 접근 방식은 바하이 신앙의 영향력이 신자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공동체 구축 활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바하이 신앙에 대해 배우고 궁극적으로 신앙에 합류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성장과 사회 변혁을 함께 중시하는 포괄적인 접근 방식입니다.

 

9. '개척자'들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개척자들은 새로운 지역에서 바하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강화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신앙의 영향력을 넓히고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경험과 헌신은 계획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귀중한 자산이 됩니다.

 

10. 9년 계획은 사회 변혁에 어떻게 기여하나요?

9년 계획은 공동체를 강화하고 개인들이 사회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줌으로써 사회 변혁에 직접적으로 기여합니다. 화합, 협력, 봉사의 정신을 길러 지역 사회와 세계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교육과 공동체 구축을 강조하는 것이 사회 변혁의 핵심 요소입니다.

 

11. 계획 실행 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문화 및 정치적 환경에 적응하는 것, 자원 부족 문제 해결, 바하이 행정 조직의 다양한 수준 간 효과적인 의사소통과 협력 등이 예상되는 어려움입니다. 계획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2. 지역별 발전 속도 차이를 어떻게 고려하나요?

계획의 유연성과 국가 성장 위원회의 적절한 판단은 지역별 차이를 고려한 접근 방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계획은 지역 상황에 따라 발전 속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집중적인 프로그램을, 다른 지역에서는 점진적인 성장 프로그램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차이를 반영합니다.

 

악카에서의 9년의 회상

Memories of Nine Years in Akka


유네스 칸 아프로크테 리아즈 마스루르의 "악카에서의 9년 회상"은 바하이신앙의 창시자인 바하올라께서 1868년부터 1877년까지 악카(이스라엘 아코)에 수감되어 있던 시절, 그 주변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프고 귀중한 역사적 기록입니다. 어린 시절 바하올라와 가까이 살면서 그 공동체의 고난과 변화를 목격한 사람이 20세기 초에 쓴 이 책은 바하이 역사에서 중추적인 시기에 대한 독특하고 친밀하며 개인적인 시각을 제공합니다. 단순한 사건의 기록을 넘어, 바하올라의 성품, 가르침, 그리고 그분의 존재가 바하이신앙의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주변 사람들의 삶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감옥의 가혹한 현실


이 책은 질병이 만연하고 황폐한 오스만 제국의 감옥 도시인 악카의 끔찍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시작됩니다. 유네스 칸은 악카를 괴롭히는 불결함, 가난, 일반적인 무법 상태를 꼼꼼하게 묘사하며, 이는 바하올라께서 가져오신 영적인 빛과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는 과밀한 수용, 불충분한 음식, 당국과 적대적인 지역 주민 모두로부터의 폭력 위협을 포함하여 바하올라와 그분의 동반자들이 겪은 가혹한 대우를 자세히 설명합니다.

특히 초기 몇 년은 어려웠습니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가족은 성채 내의 작고 비위생적인 방에 갇혀 있었고, 부패한 관리들의 변덕과 외국인과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의심하는 사회의 편견에 시달렸습니다. 유네스 칸은 바하올라에 대한 잔인함과 무례함을 보여주는 일화를 회상하며, 그분을 굴욕시키고 비하하려는 의도적인 시도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바하올라의 존엄성, 인내심, 흔들리지 않는 사랑은 변함없이 유지되어 박해자들 사이에서도 경외심과 존경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유네스 칸은 악카에 있는 초기 신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 고립되어 끊임없이 감시를 받았으며 조롱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하올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들은 그분의 존재에서 위안과 힘을 찾았습니다. 이 책은 그들이 더 넓은 바하이 공동체와 소통하고 바하올라께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한 기발한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며, 종종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었습니다.

이 책은 또한 악카의 바하이 공동체 내부의 역학 관계를 조명하며, 그러한 강렬한 압력 속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갈등과 오해의 순간을 인정합니다. 유네스 칸은 신자들의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묘사하면서 그들이 특별한 이상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상기시킵니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 내에서 단합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바하올라의 지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더욱이 유네스 칸은 특정 무슬림 인구 집단으로부터의 편견과 적대감의 사례를 회상합니다. 그는 종교적 광신과 새로운 신앙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촉발된 바하올라와 그분의 추종자들에 대한 비난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또한 바하이를 증오하고 폭력을 선동하려는 특정 개인의 역할을 강조하며 끊임없는 긴장과 불안의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유네스 칸은 악카의 바하이 공동체의 느리지만 꾸준한 발전을 꼼꼼하게 기록합니다. 그는 바하올라의 고귀한 성품, 심오한 지혜, 그의 가르침이 추종자들의 삶에 미치는 변혁적인 영향을 목격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태도가 점차 변화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변화와 성장


세월이 흐르면서 바하올라를 둘러싼 상황은 느리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분의 무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그분의 영적인 위상을 인정한 저명한 개인들의 영향력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유네스 칸은 바하올라의 움직임에 대한 제한이 점차 완화되고 결국 성채 밖, 악카의 여러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허가가 주어지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 시기는 바하이 공동체의 발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더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을 더욱 널리 전파하고 일상생활에서 바하이 원칙의 실제 적용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유네스 칸은 바하올라의 연민, 관대함, 정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예를 제공하며 바하이신앙 의 신자와 비신자 모두와의 상호 작용에서 어떻게 자신의 가르침을 일관되게 적용했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은 또한 다양한 배경과 국적을 가진 많은 방문객들이 바하올라를 만나기 위해 악카로 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유네스 칸은 이러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회상하며, 단결, 평화, 사회 정의에 대한 바하올라의 메시지가 가진 보편적인 호소력을 보여줍니다. 그는 바하올라의 존재가 이들 방문객에게 미친 심오한 영향에 대해 설명하며, 많은 방문객들이 자신의 경험에 의해 변화되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유네스 칸은 바하올라의 일상생활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분의 일상, 가족 및 동반자들과의 상호 작용, 바하이 경전을 쓰고 계시하는 데 대한 헌신을 설명합니다. 그는 바하올라의 겸손함, 유머 감각, 인류를 섬기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강조합니다. 그는 또한 바하올라의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의 안녕에 대한 걱정을 보여주는 일화를 공유합니다.

더욱이 이 책은 나중에 바하올라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 바지 저택 건설에 대해 조명합니다. 유네스 칸은 부동산 취득과 낡은 저택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성지로 점차 변모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그는 이 장소가 전 세계 바하이교인들의 순례 중심지로서 갖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악카에서의 9년 회상"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역경에 직면했을 때 믿음, 사랑, 회복력의 지속적인 힘에 대한 증거입니다. 바하이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대한 매우 개인적이고 감동적인 기록을 제공하며, 바하올라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초기 바하이 공동체의 투쟁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유네스 칸의 이야기는 바하이신앙의 변혁적인 잠재력과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그 형성기에 악카의 영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여 독자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과 심오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책은 바하이신앙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고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문제와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남아 있습니다.

https://bahai-library.com/afroukhteh_nine_years_akka


Martha Root 마사 루터


성업 선양자 마사 루트

모험적인 여성, 마사 루터

한 젊은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모험을 꿈꾸었고, 창의적인 지혜를 가졌으며,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태어난 시대는 여성의 삶의 선택지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때였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가정에 머물러야 했고, 고등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지는 일이 흔치 않았습니다.

마사 루터(Martha Root) 또한 그러한 시대에 태어났지만, 사회적 통념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습니다. 1872년에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사고로 인해 자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삶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겨졌기에, 그녀의 선택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바느질, 뜨개질, 요리 등 당시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던 활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기회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도 마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대학 교육을 받겠다고 결심했고,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1889년 대학에 진학하여 언어와 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마사 루트

 


직업과 봉사

졸업 후, 그녀는 신문사에서 일하며 저널리즘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언론계는 남성 중심의 세계였고, 여성 기자의 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마사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다양한 언론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과 그녀의 폭넓은 관심사는 이후 바하이 신앙을 전파하는 그녀의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사는 강한 의지와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바하이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915년 7월 18일, 일본 도쿄의 첫 번째 바하이인 후쿠타 씨(마사 오른쪽에 앉은)와 마사 루트와 아그네스 알렉산더.

 

바하이 신앙과의 만남

1908년, 그녀의 인생을 바꾼 만남이 있었습니다. 붐비는 식당에서 친구들과 종교에 대한 대화를 나누던 중, 근처에 앉아 있던 한 남성이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그 남성은 로이 빌헬름(Roy Wilhelm)으로, 마사에게 바하이 신앙에 관한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마사는 그 책을 읽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그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로이는 그녀에게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또 다른 책을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던 마사는 결국 바하이 신앙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1909년 마침내 바하이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바하이로서 처음으로 한 일은 신문에 바하이 신앙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터키 아드리아노플 주지사와 시장, 마사 루트(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마리온 잭(앞줄 맨 오른쪽)과 함께.

 

사자의 포효처럼

1912년, ‘압둘 바하(‘Abdu’l-Bahá)’께서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마사는 그분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 열린 여러 모임에 참석하며 마침내 ‘압둘 바하를 개인적으로 만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바하올라의 아들이자 언약의 중심을 직접 만난다는 것은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만남에서 그녀는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압둘 바하는 미국을 떠나기 전, 바하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노력은 숭고해야 합니다.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힘쓰십시오. 그러면 어쩌면 여러분의 노력으로 인해 세계 평화의 빛이 비출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사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녀는 저널리즘에 쏟던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바하이 신앙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기에 신앙심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더해졌습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바하올라의 메시지를 들을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1912년, 마사는 북미 방문 중 압둘 바하를 만났을 때, 장기적인 국제 선교여행을 제안했습니다. 압둘 바하께서는 이 계획을 승인하셨지만, 한 가지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그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녀의 평생에 걸친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사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바하이 신앙을 전파했습니다. 그녀는 농부부터 여왕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바하올라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바하이 공동체는 마사 루터를 신앙의 위대한 교도자 중 한 명으로 기억합니다.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많은 도전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바하올라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전 세계를 수차례 여행한 성업선양자(Hand of the Cause of God)였습니다. 압둘 바하는 그녀에게

“…세계를 여행하며 사자의 포효처럼 외치라.”

 

라고 말씀하셨고, 그녀는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이란 시라즈에 있는 바브의 집에서 마사 루트. 1930년 5월 4일.

 

위험을 무릅쓰고

1919년 겨울, 마사는 ‘압둘 바하의 《신성한 계획의 서한》에 대한 응답으로 남미 서해안에서 안데스를 넘어 파나마까지 여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극도로 위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녀를 말리며 혹독한 눈보라와 동상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마사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신앙의 힘을 믿고 여행을 감행했습니다.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위험천만한 여정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휴식을 취하기보다 지역 신문에 바하이 신앙에 대한 기사를 싣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단 한 순간도 허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스파한에서 이란 바하이교도들과 함께한 마사 루트. 1930년 4월 25일.

매 순간을 기회로

마사는 여행 중에도 항상 기회를 찾아 신앙을 전했습니다. 
남미 서해안을 항해하는 배에서 마사는 각 항구를 방문 할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바하이 자료와 신문 기사를 전달하는 기회를 찾았습니다. 페루 리마 근처에서 3시간 동안 기항하는 동안, 마사는 신문사 사장과, 상원 의원, 두 명의 의사에게 소개의 글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시간이 매우 부족했지만, 마사와 같은 영적인 모험가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마사는 리마에서 전차를 탔고, 기적처럼 두 명의 영어를 할 수 있는 젊은 페루인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기꺼이 그녀를 유명 호텔의 지배인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매니저는 그녀를 대신해 만나고 싶었던 네 명에게 소개글과 함께 바하이 소책자와 신문 기사를 전달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임무를 마친 마사는 배로 돌아갔습니다. 후에 파나마에서 하바나까지의 5일 간의 여행 중에 마사는 선장에게 바하이 신앙에 관한 발표를 할 수 있는 허락을 요청했습니다. 이 발표는 그 여행 구간에서 제공된 유일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녀의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어떤 날도 두 번 오지 않습니다.
숭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마사 루터는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하이 신앙을 전파하는 데 바쳤습니다.

 

 

“누군가가 말씀을 전할 기회에 주저함을 느낀다면, 어떤 종에게도 같은 날이 두 번 오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압둘바하께서는 ‘사자의 포효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외치고’ ‘새들의 노래처럼 왕국의 선율을 노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숭고한 마음은 흔들리지 않으며, 세상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If anyone feels timid about asking for opportunities to speak, let him remember that no day comes twice to any servant in the Cause, and ‘Abdu’l-Bahá has said to ‘roar like a lion the Words of God’ and ‘sing like a bird the Melodies of the Kingdom’. The great heart will not falter — and the world is ready!”

 

 

신앙의 요람에서

1930년 1월, 마사 루트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녀는 이라크를 거쳐 이란으로 여행하며 약 4개월을 머물렀습니다. 바하올라께서 탄생하신 이 땅, 신앙의 요람을 직접 밟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순례는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많은 위험과 도전을 동반한 여정이었습니다. 당시 이란 정부는 바하이 신앙을 좋게 보지 않았기에, 그녀의 행보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이란 국경을 넘자마자 마사는 종교적 편협함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세관원들은 그녀에게 바하이 서적을 소지하고 있다면 전부 불태워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다행히도 마사는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상하고 책을 소지하지 않았습니다.

쇼기에펜디는 마사가 이란에서 불필요한 주목을 받지 않도록 지방신성회(지성회)만이 그녀를 맞이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많은 군중이 몰릴 경우 정부 관리나 성직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사람들의 열정은 이를 뛰어넘었습니다. 마사가 가는 곳마다 수백 명이 그녀를 환영하러 몰려들었으며, 심지어 타종교인들까지도 그녀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가즈빈에서는 바하이들이 동원한 45대의 자동차가 그녀를 호위하며 환영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테헤란에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바하이 신자가 운영하는 호텔에 머물렀으며, 방문객들은 먼저 호텔 주인과 만난 후에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혹시 모를 위협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는 자신의 사명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강연을 지속하며 여러 신문에 기사를 기고하는 한편, 정부 주요 인사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타브리즈에서는 바압께서 순교하신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경찰서장과 총사령관이 그녀를 정원 파티에 초대했는데, 흥미롭게도 그 장소는 바압께서 감옥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셨던 창문의 바로 아래였습니다. 마사는 그들에게 바하이 신앙에 대해 설명하며 관련 서적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란에서의 순례는 시라즈 방문으로 절정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바압께서 처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선포하신 집을 직접 보았고, 그 순간 감격에 겨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토록 위대한 메시지가 이렇게 작은 집에서 시작되었다니!”

시라즈에서는 정부 관리들이 그녀를 극진히 대접하며 도시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개 강연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물라(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은 그녀의 존재를 불편해하며 모스크에서 그녀를 비난하는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사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바압의 집에서 환상을 보았고, 바하올라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는 매일 강연을 했고, 시라즈에서는 수많은 무슬림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어느 정원에서 열린 강연에는 1,100명이 넘는 남성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란에서 바하이 신자들이 여전히 박해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사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부셰르에서는 한 군 장교가 그녀를 병원으로 초대했는데, 그곳의 의료진 대부분이 바하이 신자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여정은 언제나 안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라들이 그녀를 체포하려고 도로를 감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는 부셰르로 가는 길을 자동차 대신 비행기로 이동했습니다. 또한, 이란을 떠날 때는 새벽 3시에 배를 타고 몰래 항구를 빠져나갔습니다. 이처럼 그녀의 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신앙과 용기의 증명이었습니다.

이란을 떠나며 그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페르시아, 바하올라께서 축복하신 땅이여! 나는 이곳에서의 4개월 동안 평생을 살아낸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하올라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은혜와 자비로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내면의 드라마였고, 때로는 두려움을 느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그녀의 사명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도전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발걸음

마사 루트가 겪은 도전들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만성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장기간 암과 싸웠으며, 끊임없는 통증과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휴식을 권할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쉬지 않습니다. 나는 행동 속에서 쉼을 얻습니다. 나의 가장 완벽한 휴식과 기쁨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녀가 여행하던 시대의 교통수단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이 열악했습니다. 배멀미로 고생하며 폭풍우 속에서 방에 갇혀 있어야 했고, 울퉁불퉁한 길을 마차나 말을 타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자동차가 보급되었어도 도로 상태는 여전히 험난했습니다.

또한, 그녀는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한정된 자금으로 숙박비와 식비를 감당해야 했으며, 하루 종일 강연과 인터뷰, 기사 작성, 편지 답변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여성 혼자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 없이 먼 길을 떠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마사 루트는 그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바하이 신앙을 전하는 사명을 이어갔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께 의지하며 여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병마가 그녀를 점점 약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연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신앙의 메시지를 전파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쇼기에펜디가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한 이유일 것입니다. “마사 루트는 영웅이며 성인입니다.”

 

 

영감을 주는 존재

쇼기에펜디께서는 이란의 바하이들에게 보낸 한 서한에서 마사 루트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습니다.

 

“…남성과 여성 교사들의 지도자이며… 놀라운 능력과 비할 데 없는 용기, 그리고 변함없는 신념을 지닌 독보적인 신자…”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쇼기에펜디 께서는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습니다.

 

“후세는 그녀를 ‘압둘바하의 성명’이 불러일으킨 최초의, 그리고 가장 뛰어난 성업선양자로 확립할 것이다. 현재 세대의 동료 신자들은 그녀를 바하올라의 신앙이 형성기의 시대에 탄생시킨 첫 번째이자 가장 훌륭한 열매로 인정한다.”

 

또한,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나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는 순간을 가리켜 이렇게 숭고한 표현을 남겼습니다.

 

“위대한 천상 회중이 그녀를 맞이하며 외쳤다. ‘환영하노라, 오 교도자들의 영광이여! 참으로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오 왕국을 향한 매혹 속에서 네 모든 것을 희생한 자여…’”

 

쇼기에펜디께서는 마사 루트가 현재와 미래 세대의 바하이 교도자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녀를 다음과 같이 기리셨습니다.

 

“…그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극히 소수의 바하이 교도자들만이 갖출 수 있었던 그러한 가르침의 자질을 완벽히 체현한 인물로, 오늘날과 미래의 바하이 교도자들에게 영원한 귀감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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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돌바하와 단식의 일화


어느 날, 단식 기간 동안 ‘압돌바하는 몇몇 바하이 신자들과 함께 하이파의 거리를 걷고 계셨습니다. 그때 한 빵집 앞을 지나게 되었고, 갓 구운 빵의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자 함께 걷던 한 신자가 배고픔을 느끼며, 그 빵이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압돌바하께서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요, 빵 냄새가 정말 좋군요.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기쁨은 훨씬 더 훌륭하지 않을까요!"

그리고는 신자들에게 단식을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영혼을 양육하고 정신을 강하게 만드는 기회로 바라보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신자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배고픔 대신 기쁨과 결의로 가득 차게 만들었습니다.

 

압돌바하의 단식과 이타심(利他心)

단식 기간 동안에도 압돌바하께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헌신과 사랑으로 가득 찬 에너지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하루 종일 음식과 물을 삼가면서도 남을 돕고 봉사하는 일에 더욱 힘쓰셨습니다.
어느 날, 단식 중이던 압돌바하의 곁에 여러 신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먼 길을 여행하여 압돌바하를 찾아온 가난한 나그네였는데, 그는 매우 지쳐 보였고 배고픔으로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를 한눈에 알아차리신 압돌바하께서는 즉시 주변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나그네는 주저하며, 단식 시간인 것을 알고 있기에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압돌바하께서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단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 나의 소중한 친구가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친히 그 나그네에게 음식을 대접하시며, 따뜻한 대화로 그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의 여행길과 삶에 대해 관심을 보이셨고, 그의 눈에서 배고픔뿐만 아니라 외로움까지도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한 신자가 조심스럽게 ‘압돌바하께 물었습니다.
"단식 중에도 이렇게 바쁘게 봉사하시면서 어떻게 지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압돌바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단식은 단순히 음식과 물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단식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을 잊고, 영혼을 정화하며, 전적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데 있습니다."

그날, 신자들은 ‘압돌바하의 말씀을 통해 단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식은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자신을 초월하여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사랑과 봉사로 영혼을 키워가는 과정임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Abdu’l-Bahá and the Spirit of Fasting


One day, during the Fast, ‘Abdu’l-Bahá was walking with a group of Bahá’ís in the streets of Haifa. As they passed by a bakery, the smell of freshly baked bread filled the air. One of the friends, who was struggling with hunger, commented on how delicious the bread must be.
With His characteristic warmth and humor, ‘Abdu’l-Bahá smiled and said:
"Yes, the bread does smell wonderful—but how much more wonderful is the joy of sacrificing for the love of God!"
He then encouraged the believers to see the Fast not as deprivation but as an opportunity to nourish the soul and strengthen the spirit. His words transformed their perspective, filling their hearts with joy and determination instead of hunger.

 

‘Abdu’l-Bahá’s Example of Selflessness During the Fast


During the time of the Fast, ‘Abdu’l-Bahá continued His daily activities with the same energy, devotion, and love as always, despite abstaining from food and drink from sunrise to sunset. One of the remarkable aspects of His character was that He never focused on His own needs but always prioritized the well-being of others.
One day, during the Fast, a group of believers had gathered in His presence. Among them was a poor man who had traveled a long distance to see Him. The man looked weak and hungry, and ‘Abdu’l-Bahá, immediately perceiving his condition, asked someone to bring him food. The guest hesitated, knowing that it was the time of fasting, but ‘Abdu’l-Bahá gently reassured him, saying:
"My fast is not important. What is important is that you, my dear friend, do not go hungry."
He then personally served the man with great kindness, ensuring that he was well-fed and comfortable. As the man ate, ‘Abdu’l-Bahá engaged him in warm and loving conversation, making sure he felt welcomed and honored.
Later, one of the believers asked ‘Abdu’l-Bahá about His own fast, wondering how He managed to keep up His tireless service despite the physical demands. He responded with a radiant smile:
"The Fast is not merely about refraining from food and drink; it is about forgetting oneself and serving others. True fasting is to purify the heart, to free the soul from the world, and to dedicate oneself entirely to the service of humanity."
Even while fasting, ‘Abdu’l-Bahá was always concerned for others' well-being rather than His own, demonstrating that the essence of fasting is spiritual renewal, detachment, and selfless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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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에 대한 소고

 

1863년 노우루즈의 다섯 번째 날 바그다드에서,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라우히말라훌꾸즈' Lawh-i-Malláhu'l-Quds,)이 계시되었습니다. 바하이 신앙의 역사가 나빌(Nabíl)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이 큰 소리로 읽혔을 때, 청중들의 마음에는 슬픔의 바다가 출렁였습니다... 바그다드의 장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장이 열릴 것임이 모든 이에게 명백해졌습니다. 그 서한이 읽히자 마자 바하올라께서는 치워진 천막을 접고 모든 동료들이 도시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천막이 철수되는 동안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천막은 이 세상의 장식과 같아서, 펼쳐지자마자 접히는 때가 온다.”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은 이 천막이 다시는 그 자리에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성서러운 수부의 서한이 계시되던 노우루즈 1863327일에 바하올라는 그분의 추종자들과 함께 바그다드 외곽의 들판에 천막을 치고 머물고 계셨습니다. 봄이 시작되며 날씨가 완화해지는 이 시기에 야외 생활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이 서한이 계시되고, 바하올라께서 바그다드를 떠나셔야 할 운명이 다가오고 있음이 예고되며 그분의 추종자들은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은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랍어 서한만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습니다.

 

이 서한의 주제는 성약과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메시지는 바하올라의 시대뿐만 아니라 압돌바하와 쇼기 에펜디의 시대, 그리고 현재에도 적용됩니다. 이 서한에 대해 압돌바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을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복되신 분이 미래의 사건들을 완전히 예언하셨음을 생각하십시오. 깨달은 자들은 경계하십시오!"

 

압돌바하께서는 자신의 사역 기간 동안 신자들에게 이 서한을 공부하라고 요청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임종 직전에도 다시 공부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분은 신자들 중 소수가 하느님의 대업의 수호자인 쇼기 에펜디를 대적하여 성약을 어길 것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은 상징적인 언어로 계시되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하올라의 말씀들에 담긴 영적 진리를 스스로 깨우치고 그분의 말씀을 명상해야 합니다. 바하올라께서 이 서한에서 사용하신 비유적 용어들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지만, 그분은 분명히 다가올 사건들을 예시하고 성약의 일부 측면을 전달하셨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 서한에서 자신을 '성스러운 수부', 신자들을 '방주'에 거주하는 자들로 언급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방주'는 종종 하느님의 대업과 성약을 상징합니다. 그 안에 들어가는 자들은 안전하고 구원의 해안으로 항해하며 신성한 빛을 얻습니다. 서한의 시작 부분에서 바하올라께서는 '불멸의 나무 안에 그분의 아름다움의 불꽃이 나타났다'는 그분의 계시의 불가사의한 위대함을 암시하며, '그 주위를 모세의 영광이 영존하는 군사들과 함께 둘러싸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시나이산에서 모세와 대화하신 분이 이제 이 날에 인간에게 나타났음을 증언하시며, '방주 안에 있는 이들''천사 같은 정령들'이 마음을 정화한다면 '영원한 영토에 있는 가까움의 은거처'에 이를 수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에서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들은 주께서 정해 주신 그들의 지위를 뛰어 넘어 그 위로 올라 갈 욕심을 내었다오.

그러자 불타는 유성(流星)이 그들을 쳐서 당신께서 계신 왕국에 사는 이들로부터 멀리 던져 버리었고,

이 때 그들은 높은 영광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누각 뒤에서 울려오는 장엄의 옥음(玉音)을 들었으니 그 말씀은 이와 같았다오.

 수호천사들이여! 그들을 아래의 세계에 있는 그들의 처소로 돌려보내도록 하라,

 그들은 이제까지 천국의 비둘기도 날아오르지 못한 곳까지 오르려고 하였도다…”

 

이 말씀에서 바하올라는 처음으로, 성약의 중심에 반대하여 그분의 성약을 파괴하는 자들이 바하이 공동체에서 추방될 것임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불타는 유성'은 바하올라께서 그분의 대업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하신 강력한 도구, 즉 그분의 성약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하올라 시대에 성약의 파괴자들을 추방할 권한은 오직 그분 자신에게만 있었으며, 이후 성약의 중심인 압돌바하에게, 그리고 그 후 대업의 수호자인 쇼기 에펜디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성약을 깨면 신성한 땅에 거주하는 성업선양자들(지금은 ITC)이 세계정의원의 승인을 받아 그를 추방할 것입니다.

 

종교 역사상 이전에는 어떤 하느님의 현시자도 그분의 성약을 깨뜨리는 자들과 공동체 내에서 성약의 중심을 반대하는 자들을 추방할 수단을 마련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하올라의 계시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대업은 때때로 들어오는 불순물로부터 정화됩니다. 마치 인간의 육체가 혈류에서 독성 물질을 제거하고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특별한 기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대업도 그 안에 있는 해로운 요소들을 공동체에서 정화하도록 설계된 제도를 부여받았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이 계시되었을 당시, 바하올라를 배신한 의붓형제 미르자 야흐야, 세이예드 무함마드 이스파하니 등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신자들과 어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모든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바비 공동체의 일부로 간주되었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 서한에서 그들의 운명을 암시하셨습니다. 몇 년 후, 이들은 위대한 이름의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고, 하느님의 어린 신앙은 이 오염으로부터 정화되어 더 큰 활력과 힘으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시대에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성약을 위반하고 그분의 현시자에게 불충했습니다. 과거 종교들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신앙을 분열시키고 분열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모든 종교와 주기의 완성인 이 시대에는, 비록 공동체 내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약의 중심에 대항하여 일어났지만, 그들은 결코 신앙을 분열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바하올라는 그분의 서한 중 하나에서 이 시대의 대업이 매우 크기 때문에 그것에 반대하는 부정의 힘들도 매우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충한 자들의 공격은 막강합니다. 바압과 바하올라의 성약을 파괴한 자들은 하느님의 대업의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협력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대업의 통일성을 깨뜨릴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대업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이며, 바하올라의 성약을 통해 그분의 신앙의 통일성이 영원히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바하올라의 성약을 파괴한 모든 자는 그분의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나무에서 잘라낸 병든 가지는 처음에는 생명력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고립되어 죽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약을 깨뜨린 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그들은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처음에는 신앙 내부에 혼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대업의 나무로부터 잘라내어지면 결국 그들은 멸망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이름만이 기록되어 있을 뿐, 그들의 영향력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에 언급된 '하늘에 사는 불멸의 처녀'의 출현은 비유적입니다. 바하올라의 계시에서 그분은 '천국의 처녀'를 자신을 가리키거나 하느님의 속성 중 하나를 나타내는 데 사용하셨으며, 때로는 '가장 위대한 성령'의 의인화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이 서한에서 자신을 '빛의 천막 속에 숨겨져 왔던' '높고 영광되신 청년이라고 언급하셨으며, '유형의 땅에서 사악한 자들의 손아귀로 외로이 버림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서한에는 지식의 보석들과 그분의 대업의 많은 진리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는 신앙을 깊이 탐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명상함으로써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은 페르시아어로 된 부분이 아랍어 서한과 내용이 대체로 유사합니다. 또한 여기에는 바하올라께서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주신 최고의 권고와 조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신자들에게 그분의 임재의 은총을 천지의 모든 것과 바꾸지 말고 그분 외에는 누구에게도 가까이 하지 말 것을 촉구하십니다. 그분은 마음이 가장 사랑받는 자리의 자리임을 상기시키며, 낯선 자가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일어나 자신과 욕망의 무덤에서 벗어나라고 부르짖으며, 비록 초탈과 성스러움의 높은 정상에 도달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진실하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행동이 마음의 비밀을 충실히 반영하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진실함과 충실함은 진정한 신자의 속성입니다.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시련은 그분을 따르겠다고 공언하는 자들의 불충입니다. 다른 어떤 고통, 심지어 육체적 고문과 순교조차도 이만큼 그분을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바하올라께서 '성스러운 수부의 서한'에서 암시하신 이러한 고통을 받으실 것이라는 깨달음은 그분의 동료들이 처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가장 깊은 불안을 느끼게 했습니다. 실제로, 이 계시가 내려진 다음 날, 술탄이 바하올라를 콘스탄티노플로 유배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슬픈 소식이 그분에게 전해졌고, 이 소식은 이라크에 있는 그분의 사랑하는 모든 남녀노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날 밤, 그분의 상처받은 동료들은 예외 없이 먹지도 자지도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의 유배에 동행하지 못하면 자살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바하올라의 말씀과 그분의 사랑의 온기를 통해 그분은 그들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그들이 자신의 뜻을 그분에게 맡기도록 만드셨습니다.

Tablet of the Divine Plan 

신성한 계획의 서한: 세계 변혁을 위한 청사진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바하이신앙의 성약의 중심 '압돌바하'께서 저술한 바하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저술 중 하나입니다.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한편의 서한이 아닌, 1916년과 1917년 사이에 쓰여진 14개의 서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서한은 미국과 캐나다의 바하이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 서한에는 바하이 신앙의 전 세계적 확산과 화합, 평화, 정의의 원칙 확립을 위한 신성한 청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종종가르침을 위한 헌장 (charter for teaching)”이라고도 불리는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여러 세대의 바하이들에게 세상의 영적, 물질적 변화를 위해 헌신하도록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역사적 맥락과 계시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라는 엄혹한 세계적 혼란의 시기에 계시되었습니다. 전쟁의 혼란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압돌바하'께서는 희망과 화합의 비전을 담아 이 서한을 쓰셨으며, 북미의 바하이들이 전 세계 곳곳에 바하올라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앞장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서한은 전쟁으로 인해 즉시 널리 공유되지는 못했지만 1919년 미국에서 열린 바하이 대회에(Convention of the Covenant)서 처음 읽히면서 그 실행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구조와 구성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14개의 서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가지 시리즈로 나뉩니다:

처음 8개의 서한: 1916년에 작성된 이 서한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 섬 등 전 세계의 특정 지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머지 여섯 개의 서한: 1917년에 작성된 이 서한은 첫 번째 시리즈의 주제를 확장하고 교육 및 통합에 대한 추가 지침을 제공합니다.

각 서한은 미국과 캐나다의 바하이들에게 전달되며, 종종 신앙이 확립되어야 할 특정 지역을 언급합니다. 서한의 언어는 시적이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며 기도와 권고, 신의 도움에 대한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요 주제와 목표

신성한 계획의 서한에는 바하이 공동체를 위한 대담하고 비전적인 사명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주요 주제와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전세계적 확장: 이 서한은 바하이 신앙이 모든 국가, 지역, 섬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외딴 곳과 다양한 지역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린란드, 태평양 제도,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과 같은 지역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2.      화합과 하나됨: 서한의 핵심은 인류의 하나됨이라는 원칙입니다. '압돌바하'께서는 바하이 신앙이 서로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융합의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3.      희생과 노력: 서한은 바하이들이 용기와 헌신을 가지고 일어나 안락한 곳을 떠나 먼 곳으로 가서 신앙을 교도하도록 격려합니다. '압돌바하'께서는 그들의 노력에 대한 하느님의 확증과 축복을 보장합니다.

4.      가르침과 권한 부여: 서한은 사람들에게 영적, 도덕적 원칙을 가르치고 사회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기에는 학교 설립, 문해력 증진, 바하이 문헌의 보급 등이 포함됩니다.

5.      기구 설립: 서한은 나중에 바하이 행정 질서의 기초를 형성하게 될 바하이 행정 기구의 발전을 예고합니다. 이러한 기구는 신앙의 체계적인 성장과 통합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선성한 계획의 서한의 구현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바하이 신앙의 전 세계적 확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실행은 몇 가지 주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 노력(1919-1937): 1919년 서한이 공유된 후, 바하이들은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고 소규모 바하이 공동체를 설립함으로써 '압돌바하'의 부름에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이루어졌고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부족했습니다.

 

체계적인 교도 계획 (1937-1963): 바하이 신앙의 수호자 쇼기 에펜디의 인도 아래, 신성한 계획의 서한의 원칙은 일련의 교도 계획을 통해 체계적으로 실행되었습니다. 1 7개년 계획(1937~1944)은 이러한 노력의 시작으로 미주, 유럽, 호주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후 계획은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글로벌 캠페인 (1963- 현재): 1963년 세계 정의원이 선출된 후, 바하이 공동체는 신성한 계획의 서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련의 글로벌 계획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계획에는 모든 국가에 바하이 공동체를 설립하고, 바하이 문헌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고, 교육 및 사회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이니셔티브가 포함되었습니다.

 

개척과 교도여행: 개척(신앙을 교도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이나 국가로 이주)과 교도여행(바하이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단기 여행)의 개념은 신성한 계획을 실행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수천 명의 바하이들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일어났으며, 종종 개인적으로 큰 희생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신성한 계획의 서한의 영향과 유산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바하이 신앙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유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와 영토에 바하이 공동체가 설립되었습니다.
  • 바하이 문헌이 수백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지역사회의 필요에 부응하는 교육 및 사회 활동 프로그램 개발.
  • 수많은 사람들이 인류 봉사에 헌신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오늘날, 신성한 계획의 서한의 원칙은 통일되고 평화로운 세계 문명을 건설하려는 바하이 공동체의 노력을 계속 인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정의원은 메시지와 계획에서 영감과 지침의 원천으로 신성한 계획의 서한을 자주 언급합니다.

 

 

 

신성한 계획의 서한은 시대를 초월한 변혁적인 문서로, 더 나은 세상에 기여하려는 바하이 신앙의 사명을 계속 형성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화합과 가르침의 나눔, 희생에 대한 요청은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합니다. 체계적인 실행을 통해 바하이 공동체는 '압돌바하'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으며, 그 노력은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계속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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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national Convention 세계대회

 

International Convention 세계대회는 전 세계 대표단이 모여 세계정의원을 선출하는 모임입니다.

이 대회는 5년에 한 번 4월 29일에 이스라엘 하이파에 위치한 바하이 세계본부에서 열립니다.

 

13차 세계대회

2023년 4월 29일부터 5월 2일까지 개최되었습니다.

176개국을 대표하는 약 1,250명의 각국 국성회 의원들이 이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대표들은 대회가 시작되기 며칠 전에 이스라엘 하이파와 악카에 있는 바하이 성지를 방문하여 세계정의원 선거를 영적으로 준비했습니다. 투표는 4월 29일에 실시되었고 같은 날 레즈완 축제가 열렸습니다. 처음으로 동점표가 나왔고 4월 30일 오후에 동점자 결정 투표가 실시되었고, 선거 결과는 5월 1일에 발표되었습니다. 

나머지 대회 기간 동안 바하이 공동체의 역량 강화 과정과 바하이 공동체가 이룬 영적, 도덕적, 물질적 발전에 대한 기여에 관해 대표들이 협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협의 세션이 열렸으며, 토론에서 연수원 과정이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졌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하이파에서 다른 신앙 공동체의 종교 지도자들과 하이파 시장을 초대하여 바하이 선거 과정을 공유하는 리셉션이 열렸습니다.  

이 대회은 바하올라 영묘에서 레즈완의 열두 번째 날을 기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2023년 선출된 세계정의원 의원들

선출된 세계정의원 멤버

  • Andrej Donoval
  • Paul Lample
  • Chuungu Malitonga
  • Praveen Mallik
  • Payman Mohajer
  • Juan Francisco Mora
  • Albert Nshisu Nsunga
  • Shahriar Razavi
  • Ayman Rouhani

 

 

 

 

세계대회 또는 바하이 세계대회(Bahá’í World Congress)는 전전 세계 바하이교도들이 모이는 대규모 모임입니다. 이 세계대회는 바하이 신앙 역사에서 두 차례 개최되었습니다. 첫 번째 대회는 1963년 영국 런던에서 약 6,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고, 두 번째 대회는 1992년 뉴욕에서 약 30,000명이 참석하여 진행되었습니다.

1963년: 제1차 바하이 세계대회 

1963년은 바하올라 선언 100주년이 되는 해로, 제1차 바하이 세계대회는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렸습니다. 본래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런던으로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약 6,000명의 바하이들이 행사에 참석했으며, 50개 이상의 국성회에서 선출된 첫 번째 세계정의원의 선거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대회는 바하올라 계시의 씨앗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참석자들은 전통 의상을 착용하며 다양한 문화를 표현했고, 대회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2: 제2차 바하이 세계대회 

1992년은 바하올라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제2차 바하이 세계대회는 뉴욕시 제이콥 재비츠 센터에서 11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약 30,000명의 바하이들이 참석했으며, 음악, 연설, 예술 공연, 그리고 사교 모임이 어우러진 4일간의 축제로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180개국 이상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바하이들과 함께 인류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모범을 이뤘습니다. 세계대회는 바하올라 성약 출범 100주년을 기념하고, 성약의 융합과 통합의 힘을 선포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대회 프로그램 

세계대회의 주요 세션은 매일 두 시간씩 제이콥 재비츠 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참가자가 많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동일한 프로그램을 반복 운영하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첫째 날 

 바하올라를 모든 시대의 약속으로 인정하며, "모든 인류를 위한 융합의 중심"으로서의 성약을 강조했습니다.

 

 

 

둘째 날

성약의 중심인 압돌바하를 기념하며, 성약의 포용적 본질과 뉴욕에서의 그의 역할을 조명했습니다.

 

 


셋째 날

성약 의 깃발 아래 모인 바하이 공동체의 성취를 기념했습니다.

 

 


넷째 날

대회의 정점을 이루는 세계정의원의 메시지를 통해 인류와 바하올라의 만남에 대해 깊이 탐구했습니다.

 

 

 

 

한국 바하이 공동체의 참여

1992년 제2차 바하이 세계대회에는 한국 바하이 공동체의 많은 벗들이 참여하여 세계적인 축제에 동참했습니다.

 

 

 

저의 하느님, 저의 주, 저의 소망의 목표이시여! 주님의 이 종은 주님의 돌보심과 주님의 보호를 간원하면서, 주님의 자비의 피난소에서 잠들고, 주님의 은총의 지붕 아래서 쉬고자 하옵나이다.
저의 주여, 제가 주님께 간원하옵나니, 잠들지 않는 주님의 눈으로 저의 눈을 지켜 주시와 주님밖에는 아무 것도 보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저의 시력을 강화시키시어 주님의 표적을 알아보고, 주님의 계시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는 주님의 그 전능하심이 나타날 때 그 앞에서 어떠한 권력도 무서워 떨게 하신 분이시옵나이다.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정복하시며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주님 이외에 다른 하느님이 없사옵나이다.
--바하올라

 

 


 

 

하느님, 저의 하느님, 주님을 애모하는 이들이 주님과 멀리 이별해 있음으로 해서 눈을 감을 수 없는 이 시간에, 제가 어찌 잠을 잘 수 있겠사오며,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주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애태우고 있는 이 때에, 제가 어찌 누워 쉴 수 있겠나이까?
저의 주여, 저는 저의 정신과 저의 전존재를 주님의 권능과 주님의 보호의 오른 손 안에 맡기오며, 주님의 위력을 통하여 저의 머리를 베개 위에 눕히옵고, 주님의 의지와 주님의 뜻에 따라 머리를 드옵나이다. 진실로 주님은 보존하시고 유지하시는 분이시오며 전능하시고 가장 강력하신 분이시옵나이다.
주님의 권능에 의지하여 말씀드리오니, 제가 잠이 드나 깨어있으나 간에 주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을 제가 요구하지 않사옵나이다. 저는 주님의 시종이오며 전적으로 주님의 손 안에 있사옵나이다. 저를 인자하게 도와주시와 제가 주님의 좋으신 뜻의 향기를 퍼뜨릴 일을 하게 해 주소서. 이것이 진정 저의 소망이오며, 주님 곁에 가까이 있는 이들의 희망이옵나이다. 여러 세계들의 주여, 주님께 찬송올려지이다.
--바하올라

필수기도에 대한 그대의 질문에 답하노라. 진실로, 누구든 필수기도를 절대적 성실성으로 읽는다면 그는 모든 창조물을 끌어당길 것이며, 존재계에 새 생명을 부여할 것이다. 이 종이 주께 간원하니, 당신께 사랑받는 이들을 이 세상의 흥망과 집착, 불만과 어둠으로부터 구해주시고, 어떤 경우에나 당신께 가까이 다가가게 할 것으로 그들을 장식해 주시옵기를. 진실로 그분은 모든 것을 소유하시고, 가장 높이 계신 분이시다.

- 바하올라, 페르시아 원문 성한 번역본 



필수기도는 겸손과 순종을 이끌고, 하느님께 얼굴을 고정해 그분께 예배를 드리도록 만들기에 의무적인 것입니다. 필수기도를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 사귀고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하고, 가슴 속 참된 연인과 대화하며, 영적 지위에 도달합니다.

- 압돌바하, 페르시아 원문 성한 번역본

 


 


필수기도의 모든 말과 동작에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고, 문자와 문서가 담을 수 없는 의미와 신비, 지혜가 있습니다.

- 압돌바하, 페르시아 원문 성한 번역본 [58]

 




“모나자트”의 낭독과 관련해, 런던 신성회가 귀우를 통해 수호자께 질의한 질문에 답변 드립니다. 수호자께서는 먼저 “나마즈”와 “모나자트”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주목하기를 바라십니다. "나마즈"는 바하올라께서 특정하신 필수기도로서, 지성서에 처방된 그분의 명확한 지침에 따라 개인 공간에서 낭송되어야 합니다. "모나자트"의 낭송은 의무가 아니며, 낭송 방식에 관한 어떤 규정도 없습니다. 모나자트를 낭송할 때 교우들이 각자 자신의 성향을 따를 자유가 주어지지만, 어떤 방식이든 지나친 엄격성을 띠게 되거나, 제도화되는 일이 없도록 지극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교우들은 이 점을 언제나 유념하여, 가르침에 명시된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4년 10월 25일자 대필 서한 발췌문, 개인에게

* 모나자트는 페르시아어로 기도를 의미한다.

* 나마즈는 페르시아어로 매일의 필수기도를 의미한다. 

 

 




필수기도는 본성상 여타 기도보다 강력한 효력과 힘을 지녔으며, 그렇기에 필수적입니다.

- 쇼기 에펜디, 1936년 1월 4일자 대필 서한 발췌문, 

 




필수기도에 관한 지침으로, 얼굴과 손을 세정하고, 절을 하며, 손을 들어 올리는 것과 같은 동작은 바하올라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하이는 온전한 믿음으로써 이를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바하이 청소년은 더욱 그러한데, 진리를 입증하고 바하이 신앙의 법과 계명의 진리를 입증하고, 그것을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는 주된 책임이 바하이 청소년의 양 어깨에 지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필수기도는 세 편이 있습니다. 이 중 단편필수기도는 24시간 중 정오에 한 번 낭송합니다. “주께서는 당신 외에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증언하시옵니다”로 시작되는 중편필수기도는 아침, 정오 및 저녁, 하루 세 번 낭송해야 합니다. 중편기도에는 특정한 동작과 몸짓이 뒤따릅니다. 세 편의 필수기도 중 가장 정교한 장편필수기도는 24시간에 한 번, 개인이 선택한 시간에 낭송하면 됩니다.
바하이는 세 편의 필수기도 중 어느 하나를 전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 편 중 하나는 반드시 낭송할 의무가 있으며, 필수기도에 관한 구체적 지침을 따라야 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6년 1월 10일자 대필 서한의 발췌문, 미국과 캐나다 국성회에게

 




귀우는 마즈레꼴아즈카르에서 필수기도를 수행하는 것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이에 대해 수호자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마즈레꼴아즈카르에서 필수기도를 수행하는 것은 금지 사항이 아니며, 의무 사항도 아닙니다. 망자를 위한 기도를 제외하고 회중기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마즈레꼴아즈카르 내 필수기도를 낭독하는 장소 및 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해당 도시의 신성회에 회부될 이차적 사안입니다.”

- 쇼기 에펜디, 1937년 1월 30일자 대필 서한 발췌문

 




수호자께서는 귀우가 매일의 필수기도 낭송에 관한 바하올라의 명을 충실하게 따르고 바하이 청년들 사이에서 귀감이 되었다는 사실을 특별히 고맙게 생각하십니다. 매일의 필수기도는 오직 규칙적으로 필수기도를 낭송하는 이들만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효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우들은 삶의 상황과 조건이 어떠하든지 필수기도문을 매일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9년 2월 23일자 대필 서한 발췌문

 




매일의 필수기도문 세 편에 관한 귀 교우의 질문에 답변 드립니다. 바하이 예배자는 이 세 편의 기도를 모두 낭송할 의무는 없으나,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매일 낭송해야 합니다. 이때 손을 들어 올리고, 무릎을 꿇는 것과 같이 낭송에 관련해 바하올라께서 계시하신 특정 지침을 엄격히 준수해야 합니다. 신체적 질병이나 장애 등 여러 이유로 이 규정을 준수할 수 없어서 지침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은 단편 기도문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단편필수기도문은 매우 단순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9년 12월 7일자 대필 서한의 발췌문

 




수호자께서는 귀우가 정오의 단편필수기도만 활용하도록 조언하십니다. 단편필수기도에는 예배 시 무릎을 꿇는 동작이 없고, 기도를 할 때 바하올라의 유해가 안치된아카를 향해 얼굴을 향하기만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내적 실재에 대한 물리적 상징의 하나입니다. 마치 식물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 태양을 향해 뻗어가는 것처럼 우리의 내면을 하느님의 현시자께 향하고, 기도를 낭송하는 동안 내적 행위의 상징으로서 그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을 향해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신앙에서 의례와 의식을 극도로 간소화하셨습니다. 중편과 장편 필수기도와 관련된 몇 가지 의식은 내적 상태의 상징일 뿐입니다. 여기에는 지혜와 축복이 있으나 이것들을 억지로 이해하거나 느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분은 중, 장편기도와 관련된 동작을 수행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간단한 형태의 단편 기도를 주셨습니다.

- 쇼기 에펜디, 1949년 6월 24일자 대필 서한의 발췌문,

 




장편필수기도의 적절한 사용에 관한 질문에 대해 답변 드립니다. 신앙의 모든 경전은 교우들에게 지침과 영감을 제공하도록 낭독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특정 기도문도 포함됩니다. 어느 교우가 무릎을 꿇는 동작을 요구하는 어느 필수기도를 신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으나, 필수기도로서 그 기도를 하기를 열망한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체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는 구절의 의미는 의료진이 확인한 진정한 신체적 장애를 말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55년 2월 17일자 대필 서한의 발췌문,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지성회에게

 

 




세계정의원은 모든 신자들이 개인과 공동체의 예배의 삶을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법에 하사된 축복을 더 깊이 인식해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이들 법의 핵심 내용은 모든 바하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 보다 깊은 통찰을 얻으려면, 율법의 준수와 관련해 신성하게 계시된 제반 요소를 반드시 함께 수행해야 합니다. 이들은 필수기도, 단식, 가장 위대한 이름의 95번 암송과 관련된 율법입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행을 하지 않고, 예배도 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와 같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행동과 같다. 누구든 예배의 신성한 황홀경을 경험한 이는 예배와 하느님을 찬미하는 행위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단식과 필수 기도는 인간의 삶의 양 날개다. 이 두 날개의 도움으로 모든 세계의 주, 하느님의 사랑의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이는 복이 있다.”

- 세계정의원, 1999년 12월 28일자 서신 발췌문, 전 세계 바하이들에게 

 


 

 

필수기도나 그 밖의 기도에서 바하이 기도의 특징인 단순함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엄격함과 의례는 철저하게 피해야 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6년 10월 30일자 대필 서한, 첨부 자필 첨언

 


 

“나마즈”와 같은 특정 필수 기도를 제외하고, 신자는 자신이 택한 방식이나 방법으로 일상의 기도문을 낭송할 수 있습니다. 이들 기도문에 관해 어떤 경우에도 교우들에게 획일성을 부과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배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도를 올릴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합니다.

- 쇼기 에펜디, 1935년 7월 6일자 대필 서한 발췌문

* 나마즈(Namáz)는 페르시아어로 매일의 필수기도를 의미한다.

 


 

 

 

 

인도를 위한 기도



이 기도의 공식 번역은 아직 발행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바하이 세계본부의 한 직원의 요청으로 이 기도의 임시 번역본이 제공되었으며, 이 번역본은 그가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고 공식 번역이 발행되기 전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아래에 임시 번역을 제공합니다.

 

O my God!

Thou seest me detached from everything save Thee and clinging to Thee. Guide me then in my doings in a manner which profiteth me for the glory of Thy Cause and the loftiness of 
the state of Thy servants.

 

오 저의 하느님이시여!

주님께서는 보시옵나이다, 저는 주님을 제외한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하여 오직 주님께 매달리고 있사옵나이다. 그러하오니 저의 행실을 주관하시어 주님의 대업를 영광되게 하시옵고, 주님의 종들의 고귀한 지위를 높일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도는 축복받은 아름다움(바하올라)께서 지나브-이-사만다르(셰이크 카짐 사만다르 Shaykh Kázim Samandar )에게 계시하신 것으로, 그는 성업선양자 타라주올라 사만다리(Tarázu'lláh Samandarí)의 아버지입니다. 이 기도는 그가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계시되었습니다. 기도는 19번 반복하여 암송한 뒤, 문제를 묵상하고, 해결책을 구상하며, 마음에 품은 해결책을 실행하도록 권장되었습니다. 

Fire Tablet 불의 서한 : 고난 속에서의 희망과 영적 정화의 메시지

 

불의 서한의 아랍어 명칭

Lawh-i-Qad-Ihtaraqa'l-Mukhlisun

음역 : 로히-이-카드-이타라카알-무클리순

 

명칭의 의미

"Lawh-i-Qad-Ihtaraqa'l-Mukhlisun"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성실한 이들(Mukhlisun :직역의 뜻은 진실된 Sincere)이 불타(qad ... ihtaraq)는 서한"을 의미하며, 권위 있는 번역으로는 "the hearts of the sincere are consumed in the fire - 성실한 이들의 가슴이 타옵니다 (바하이 한국어 기도서 번역)..."로 해석됩니다.

 

이 명칭은 불의 서한의 첫 번째 문장에서 "성실한 이들은 진실로 주님과 너무 떨어져 있어 가슴이 타옵니다."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고, 마지막 문장인 "모든 종들이 이 서한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본다면 그들의 핏줄 속에 세계들을 활활 타게 할 불씨가 지펴질 것이니라."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습니다.

 

불의 서한이 계시된 언어

아랍어, "saj" 사즈 - 운율이 있는 아랍어 산문

서한의 수신자

하지 세이예드 알리 아크바르 다하지 Hájí Siyyid 'Alí-Akbar-i-Dahájí  (세이예드 메흐디 다하지 Siyyid Mihdíy-i-Dahají 의 조카)

* 세이이예드 메흐디 다하지는 초기 저명한 바하이 여행교도자였으나 추후 성약파괴자가 됨

 

서한이 계시된 이유:

이 서한은 알리 아크바르의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계시되었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알리 아크바르에게 이 서한이 그로 하여금 바하올라의 온유함의 향기를 느끼게 하고, 바하올라와 그분의 추종자들이 겪은 고통을 알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알리 아크바르의 삼촌인 세이에드 메흐디 다하지에게는 바하올라께서 알리 아크바르의 마음에 기쁨을 불러일으키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불태우기 위해 이 불의 서한을 계시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 서한이 계시된 이유를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시 공동체 내의 상황과 성약 파괴자들에 의해 야기된 이러한 상황이 바하이 공동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수의 성약 파괴자들이 바하올라와 그분의 대업를 훼손하고 파괴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이 적대감은 질투에 의해 촉발되었으며, 이를 통해 공동체에 바하올라와 그분의 추종자들을 비하하려고 했습니다. 바하올라께 더 큰 슬픔을 안겨준 상황은 몇 명의 바하이들에 의해 실행될 음모였습니다. 이 음모 목표는 성약 파괴자들의 악의적인 활동을 종식시키는 것이었지만, 바하올라께서 그들에게 계획을 실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경고는 무시되었고, 결국 바하올라께서 공동체에서 물러나셨습니다). 이 시기에 불의 서한이 계시되었습니다. 이 서한의 계시는 바하올라께서  '그분의 마음을 쏟아부은' 수단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한에서 답변된 질문:

어떤 특정 질문이 무엇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서한은 알리 아크바르가 바하올라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답변으로 계시되었습니다.
또한 이 서한은 바하올라께서 던지는 일련의 (아마도 수사적인)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한의 끝부분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서한이 계시된 날짜

1871년 말

계시된 장소:

악카, 바하올라께서 우디 캄마르 Udi Khammar의 집에 머무시던 시절

* 성지 순례를 가시면 볼수 있는 아부드의 집은 두채의 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쪽집이 아부드가 소유했던 집으로 바하올라께서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후 임대한 첫번째 부동산입니다. 동쪽에 있는 집은 우디 캄마르가 소유했으나, 몇년 후 바하올라 성가족에게 임대해주었습니다. 우디 캄마르는 악카의 부동산 상인이였고 기독교신자였으며 바지저택의 소유주였습니다.

이 곳에서 바하올라의 모서인 케타베 악다스가 계시되었습니다.


서한의 스타일, 장르 

- 어조: 이 서한은 두 가지 어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입 부분에서는 바하올라께서 종의 신분으로 겸손하고 간청하는 톤으로 말씀하시지만, 끝 부분에서는 명령과 권위의 톤으로 바뀝니다.
- 장르: 시 ( 운율이 있는 아랍어 산문 ), 기도

 


서한의 화자:

바하올라께서 처음에는 하느님께 말씀드리는 인간의 목소리로 말씀하시다가, 이후 하느님의 목소리로 응답하십니다. 

 

"바하올라께서 이 서한을를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계시하셨습니다. 마치 하느님의 현시자와 구별된 그분의 인간적 자아가 그분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적들의 악행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바하올라의 응답이 이어집니다." - 바하올라의 계시 : Revelation of Bahá'u'lláh 

 

서한의 개요:

처음 28개의 연에서 바하올라께서는 그분의 고통을 애도합니다.

 

연의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애도; "어디에...?  Where is...?" 

(대조해서 그 다음 으로)

"오 O (하느님의 속성)"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어디에 주님의 용안의 빛이 환히 비치고 있나이까?" , "세계들의 임이시여."

"Where is the gleaming of the light of Thy Countenance, O Beloved of the worlds?"


중간 즈음에 형태가 잠시 바뀌어   

Canst thou see any who have championed Thy Self.

"주님 당신을 옹호해서 앞장서 싸운 이를 한 사람이라도 보셨사오며,... "로 시작하여

 "이제 저의 붓이 멈추옵니다..."로 이어집니다.

이는 전환 또는 일시 정지의 기능을 합니다. 

그런 다음 원래의 형태가 반복되며, 문제와 해결을 위한 간청이 여덟 개의 연에서 반복됩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의 목소리가 바하올라에게 12개의 연으로 응답합니다.

이 또한 대조적인 스타일이지만, 이번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추위가 없었다면... 그대 말씀의 열기가 어떻게 세상에 전파되리오."와 같은 차가움과 뜨거움의 이미지가 사용됩니다. 여기서 사용된 다른 대조적 쌍으로는 고독과 하나됨, 재앙과 인내, 증오와 간과, 비천함과 영광 등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는 단계적으로 애도를 변화시키며 희생과 인내, 죄를 간과하는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바하올라께서는 또한 "세계들의 긍지여 O Pride of the worlds"와 같은 다양한 칭호나 속성을 하느님의 목소리로부터 받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런 다음 하느님의 부름을 들었으며 이제 빛나고 주님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었다고 응답하십니다.

마지막 두 구절은 일종의 "코다 coda: 악곡 끝에 결미로서 덧붙인 부분." 즉 공식적인 끝의 기능을 합니다. 끝에서 두 번째 구절은 알리 아크바르에게 하는 독백(일종의 덧붙임)으로, 이제 그가 바하올라께서 겪은 고통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구절은 이 서한을 주의 깊게 읽는 모든 사람이 "불타오를 것"이라는 약속으로, 바하올라와 그분의 대의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다시 불타오를 것이라는 은유를 표현합니다.

 

서한의 주요 주제:

전체적인 주제는 바하올라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 특히 당시 신자들이 직면했던 시험과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인내와 굳건함인 것 같습니다.


1. 이 서한이 기록된 당시 바하올라께 내려진 수 많은 고통

2. 이 서한에 담긴 엄청난 힘

3. 성약 파기가 하느님의 현시자에게 가져오는 엄청난 슬픔

4. 하느님의 현시자의 불가분성... 즉, 그분의 인간적 본성과 신성한 영혼이 혼합되어 있으며, 어느 때라도 이것이 사실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5. 세이예드 무함마드와 그 추종자들의 기만와 배신.
6. 바하올라께서는 이 불신자들에 대해 하느님의 진노를 소환하십니다.
7. 그분은 다른 서한에서 이 간청의 이유가 몇 명의 악한 자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무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고통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설명하십니다.
8. 사람들은 지상의 모든 이들에게 하나됨, 사랑, 자비를 실천하도록 권고받습니다.

서한 수신자의 전기 또는 약력:

서한과와 관련된 두 인물이 있습니다: 수신자인 하지 세이예드 알리 아크바르 Hájí Siyyid 'Alí-Akbar-i-Dahájí와 그의 삼촌인 세이예드 메흐디 다하지 Siyyid Mihdíy-i-Dahájí Ismu'lláh.

세이예드 알리 아크바르 

"세이예드 알리 아크바르(Ḥájí Siyyid Alí-Akbar-i-Dahájí)는 초기 신자 중 한 명으로, 그처럼 뛰어나고 경건한 영혼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는 세이예드 메흐디의 조카로, 외적으로도 매우 잘생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낭송할 때, 천상의 무리와 압하왕국의 주민들까지 그의 목소리에 기쁨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나 또한 그처럼 아름답게 낭송하는 이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알리 아크바르는 여러 차례 바하올라의 면전에 나아가 그분의 무한한 은총과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와 바하올라의 관계는 진정한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의 관계로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해 계시된 수많은 서한 중, 특히 불의 서한이 유명합니다. 알리 아크바르는 바하올라를 마지막으로 만나 뵌 후 성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테헤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망 후, 바하올라는 알리 아크바르에게 깊은 애착을 가지고 계셨음을 드러내셨고, 그의 이름이 그분의 면전에서 자주 언급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후 바하올라는 그의 삼촌인 세이예드 메흐디를 세이예드 알리 아크바르라고 부를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 Taherzadeh의 설명

세에예드 메흐디 다하지

"(그들 중에는) 오랜 세월 신앙 안에 머물렀지만,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부패하고 죄 많은 자들로 알려졌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악명 높았던 자는 자말 부르조르디와 세이예드 메흐디 다하지였습니다. 자말은 바하올라로부터 Ismu'lláhu'l-Jamál(하느님의 이름, 자말)이라는 칭호를 받았으며, 세이예드 메흐디는 Ismu'lláhu'l-Mihdí(하느님의 이름, 메흐디)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이 야심 많고 속임수에 능한 자들은 오랜 세월 신앙의 주요 교도자로 활동했으며, 그들의 명성은 공동체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선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들의 결점을 덮어주셨고, 그들을 위해 수많은 서한을 계시하시며 신실함과 고귀함을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인내와 관대함으로 그들의 단점을 넘어보셨지만, 그들의 신앙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부 행동에 대해서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세이예드 메흐디는 야즈드지방의 자하지출신으로, 바그다드, 아드리아노플, 그리고 악카에서 바하올라를 직접 만나 변함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말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전역을 여행하며 신자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지만, 분별력 있는 이들은 그가 불성실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바하올라께서는 그의 결점과 잘못을 감추시며 서한에서 끊임없는 사랑과 친절로 성실함, 순수함, 초연함을 권고하셨습니다. 거의 모든 서한에서 이러한 권고가 빠지지 않았습니다. 바하올라가 바그다드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향하실 때, 그분은 세이예드 메흐디에게 자신의 집으로 이사해 그분의 집을 관리하도록 명하셨습니다." - Taherzadeh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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