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하이 순교자

몰라 무함마드 레다 (Mullá Muhammad-i-Ridáy)

 

 

몰라 무함마드 레다(Mullá Muhammad-i-Ridáy)는 야즈드(Yazd) 지방의 무함마드 아바드 (Muhammad-Ábádí)의 태생으로, 이름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무슬림 성직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그런 그가 바비 운동 초기에 신앙을 받아들여 바압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 그는 바하올라께서 쓰신 초기 서한 중 하나인 (Qasidiy-i-Varqa'iyyih)를 읽고 곧 바하올라께서 바얀에 약속되신 약속된 분임을 알아보았다. 대업을 받아들였던 순간부터 테헤란의 감옥 안에서 생을 마칠때까지 그의 전 생애는 오직 가르침의 전파에 바쳐졌다. 벗들에게 몰라 레다는 장신의 건장한 체격을 가진 노인으로, 진솔한 유머와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 뛰어난 용기와 인내심을 가졌던 인물이라 전해진다. 무엇보다 그는 바하올라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찬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테헤란의 감옥에 있을 때 지방 영주와 귀족들 앞에 불려 나와 여러번 신앙에 대한 심문에 답해야 했을때 매번 그는 누구보다도 정확하고 풍부하게 코란을 인용하여 심문자들의 무지와 편견을 드러내 보이곤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당당한 태도가 자신을 한층 더 혹독한 곤경에 빠뜨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감옥 생활을 같이 했던 벗들 중 시이드 아사둘라는 몰라 레다가 바하이로서 보여주었던 면모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혹독한 감옥생활로 한층 더 연로해진 몸에도 불구하고, 형이 집행되는 동안 그는 몸을 비틀거나 희미한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고통도 스치지 않았다. 잠시 그는 마치 모든 감각을 잃은 듯 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벗들은 그가 겪었을 고통 앞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고문이 끝난 직후 고통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하려 달려간 내게 오히려 그가 놀라며 말하였다. "오, 세이예드 아사둘라! 당신은 정말 내가 고통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이요? 채찍질이 계속되는 동안 마치 술취한 코끼리가 된 느낌이었소.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지, 나는 바하올라를 면전에서 뵙고 그 분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오."

이를 지켜보던 많은 일반인 죄수들 중에 굴람 리다 칸이 있었다. 그는 초인간적인 인내의 광경을 목격하면서 깊이 놀라고 감동하여 이어 신앙에 대해 알아보기를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그 자신이 헌신적인 바하이가 되었다. 감옥에서 풀려났을때 어떻게 바하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만약 나를 위해 누군가 코란의 수백 귀절을 암송하였거나, 이 소식이 진실임을 입증하는 수천 가지 이유를 제시해 주었다고 한들, 강직한 심성의 연로한 물라 리다가 고문 중에 보여준 흔들림없던 침묵만큼 내게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죄수 생활을 같이 했던 물리 리다의 또다른 절친한 벗인 미르자 호세인 자냐니는 다음과 같이 몰라 레다를 말하였다. "16개월동안 나는 그의 가까운 친구로 마음을 바쳐 그에게 봉사하였다. 그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빨아주고 내 힘 닫는데까지는 모든 것을 다해 그를

안케 해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내게 감사해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신 그는 "나를 위해 편안과 도움을 베풀어주시는 축복받은 아름다움께 감사드린다"고 하였다.

그에게 음식을 가져다 줄때 마다 그는 "오 바하올라 당신께 감사드리옵니다!"라고 하였다. 또 누군가에게 자선을 베풀때에도 그는 "나는 이것을 바하올라께 드립니다" 고 하였다. 하루는 셔츠를 입지 않은 죄수가 들어오자 이를 보던 몰라 레다가 내게 말하길 "이 불쌍한 청년은 비록 자신의 주님이 누구인지 모른다 해도, 바하올라의 종이다. 그가 벗고 있으니 우리가 가진 것 중 여벌의 셔츠로 그를 입히자. 감옥에서 여벌의 셔츠는 사치이다."라 하였다. 이에 "내가 방금 빤 여벌의 셔츠가 지금 그대가 입고 있는 것이니 그것을 벗어 저 소년에게 줍시다" 라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격앙된 어조로 내게 분을 내었다. "지금 나보고 깨끗한 셔츠는 내가 입고, 입던 것을 바하올라의 손에 바치라고 하는 것인가? 어떻게 그렇게 잔인한 제안을 하는가? 그대는 바하이가 아닌가? 바하올라께서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면 자선이 아니라 하셨오. 도데체 얼마나 걸려야 그대가 이를 이해하게 될 것인지".

벗들은 그에게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감옥 안에서 문초받을 행동을 자제할 것을 여러번 부탁하였으나 그는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바하올라를 선포하였다. 이 때문에 결국 다른 이들이 감옥에서 풀려날 때도 홀로 남아 투옥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이 사실을 듣고 우리 모두가 근심과 슬픔에 싸여 있을 때 몰라 레다만은 담대하고 행복하며 어느때보다도 더 활기차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의 곁에서 누군가 그의 연로한 몸을 보살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 일이 있은지 열흘 뒤 그는 영원히 사랑받으시는 분의 면전으로 여행을 떠났다.

 

<The Revelation of Baha'u'llah>Vol.(Bagdad 1853- 63) GR,1974,84-91쪽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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