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드 서한 이야기
아흐마드라는 명칭을 가진 서한이 둘 있는데, 하나는 페르시아어로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어로 된 것이다. 아랍어된 아흐마드 서한은 전 세계 바하이 공동체에서 쓰고 있는 서한이며, 수호자께서 특별한 효험이 담긴 서한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페르시아판 서한은 매우 장문의 서한이며 카산의 아흐마드에게 보낸 것이다. 이 페르시아 서한의 발췌문은 바하올라의 선집에 수록되어 있다.
카산의 아흐마드는 하제 메르자 자네의 형제로서 카산에서 처음으로 바비신앙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집에 바압께서 몇일 계셨고, 카산의 아흐마드는 테헤란에서 순교당했다. 하제 메르자 자네는 삼형제였는데, 그중 맏형은 하제 메르자 자네가 바비가 되어 열심히 교도해도 자신의 신앙을 고집하고 전혀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슬람교도로 생애를 마감했다.
둘째 형은 에스마일이었으며, 그는 바하올라께서 자벱(희생자)라는 명칭과 아니스(벗)이라는 명칭이 하사되었다. 막내는 바그다드로 갔는데 아흐마드였다. 아흐마드는 고래의 미이신 바하올라와 함께 지냈고, 주님께서 이스탄불로 유배가실 때 함께 갈 수 있었던 영예가 주어졌다. 그러나 불행히도 시련과 시험의 폭풍우 속에서 아흐마드는 정도에서 이탈하여 아잘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아흐마드는 축복받은 아름다운 주님과 성가(聖家)와 교우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아흐마드의 악행과 신앙에 끼치는 악영향을 경고하기 위하여, 바하올라께서는 그에게 훈계와, 참된 구도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고와 신성한 권능에 대한 설명으로 가득한 장문의 페르시아 서한을 보내셨다.
아흐마드는 이러한 권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아무런 감동도 없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자신이 터키에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라크로 돌아가서 옛 지인들과 만나 그들과 더불어 불법적인 삶을 자행했다. 아흐마드의 가장 나쁜 습관 중 하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 가장 나쁜 언어로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사악한 친구들과 논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날카로운 칼과 같은 말투로 친구들을 욕했고, 피해자들은 아흐마드를 제거하기 위해서 야밤에 그를 살해했다.
아흐마드 구도(求道)를 시작하다.
바하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아흐마드 서한을 계시받는 영광을 누린 아흐마드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는 상당한 귀족 가문의 부유한 가정에서 야즈에서 (약 1805년경에) 태어났다. 부친과 삼촌들은 마을의 촌장이었지만, 아흐마드는 14살의 어린 나이에도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였고, 진리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애썼다. 15살 때, 이미 구도의 길을 시작했고, 그 기간 동안에 몇 사람으로부터 성인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고, 그들은 특별한 기도문이 있어서 수차례 반복해서 읽으면서 특정 의식을 따라 하면 틀림없이 약속된 까엠(이슬람교의 메시야)의 용안을 뵐 수 있다는 말을 접했다.
이 소문을 듣고 그는 마음에 구도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는 수도자로서 수행하면서 장문기도와 금식 및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과 친척들이 이러한 수행을 절대적으로 반대했으며, 평범한 세상살이와 야망과 사뭇 다른 수행자로서의 삶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러한 반대는 사실상 전심으로 사랑하는 주님과의 재회를 꿈꾸며 열정적으로 구도하는 아흐마드와 같은 이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에 아흐마드는 짐을 꾸리고 목욕탕에 간다고 해놓고는 그길로 바로 출가하여 하느님의 현시자를 찾는 여정을 떠났다.
걸인의 옷을 입고, 아흐마드는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마음의 벗이 될 만한 정신적 지도자를 만나는 곳 마다, 큰 예경심과 방정한 태도로 그 스승의 발아래 앉아 신비로운 진리의 세계로 이끄는 여정을 찾고자 몹시도 원했다. 그 때마다 아흐마드는 스승에게 특별한 기도를 간청했고, 그 기도를 읽음으로써 사랑하는 주님의 궁전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듯 했다. 누군가가 어떤 수행법을 알려주면, 아흐마드는 열과 성을 다해 그 수행법이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도 따라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의 구도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사라지자, 아흐마드는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신비주의 스승이 많고 특별한 능력과 영적 재능을 가진 은둔 수도승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아흐마드는 봄베이로 가서 그곳에 숙소를 정하고 다시금 약속된 주님의 영광스런 궁전을 단 한번이라도 힐끗 볼 수 있게 해줄 스승을 찾았다.
아흐마드는 목욕재계를 하고나서 티 없이 깨끗한 백의를 입고 오체투지하여(엎드려), 코란의 성구인 “하느님 외엔 다른 하느님이 없나이다.”는 말씀을 12000번 낭송하면, 자신의 목표인 맘 속 바람을 분명히 성취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씩이나 몇 시간씩 12000번 낭송하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무명(어둠) 속에 갇혔다.
크게 실망하여 아흐마드는 페르시아로 돌아오지만, 바로 고향마을로 향하지 않았다. 카산시에 정착하여 자신의 전문분야인 모직업을 시작했다. 곧 아흐마드는 사업이 번창하여 크게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구도의 정신이 꿈틀거렸다.
낯선 사람이 소식을 알리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그러면 주어질 것이니라.” 참된 구도자라면 주님의 자비의 문에서 실망하거나 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간 적이 없었느니라.
여기 카산에서 약속하신 까엠이 출현할 것이라는 소문을 접했다. 아흐마드는 끊임없는 노력과 진실된 구도정신으로 많은 이들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현시자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여행자가 이 마을에 도착하여 아흐마드가 사업을 하는 여관에 묵게 되었다. 아흐마드는 내면에 소리가 이끄는 대로 이 낯선 여행자에게 다가갔다. 대화를 나누다가 나그네는 이미 소문이 날대로 난 이야기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오?” 라고 나그네가 말하자, 아흐마드는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알고 싶소.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네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구도의 길을 갈 것이오.”라고 했다. 나그네는 얼굴에 반가운 미소를 띠며, 그에게 쿠라산 지방으로 가서 몰라 압돌 카리끄라는 대학자를 찾아가보라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날 아흐마드는 쿠라산 지방으로 길을 떠났다. 이웃 가게 주인들은 아흐마드가 사업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아흐마드와 그 나그네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거지?”라며 서로 수근거렸지만, 아무도 정확한 상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흐마드는 걸어서 수많은 사막과 산을 건넜지만, 마음은 큰 기쁨과 소망으로 벅차올랐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탐스러운 결실을 맺을 시간이 점점 다가옴을 느꼈다. 바로 구도의 대상이신 사랑하는 주님을 재회하는 것이며, 그분과의 재회를 위해서라면 온갖 노력을 다 할 것이며, 그분의 길에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였다.
아흐마드가 쿠라산의 수도인 마쉬하드에 도착했을 때, 기력이 소진하고 몸이 아파 침상에 누어있어야 했다. 두 달간 자신의 허약해진 체질을 이겨내려고 모진 노력을 한 다음에, 아흐마드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고 용기를 내어 곧장 소원(所願)했던 집의 대문에 갔다. 이 시기에 대한 아흐마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제가 그 집에 당도하여 문을 두드리니, 하인이 나왔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그 하인이 말했습니다. ‘뭘 원하는 게요?’ ‘주인어른을 만나야겠소.’라고 했더니, 그 하인이 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난 뒤, 몰라가 직접 나왔습니다. 몰라는 나를 집으로 안내했고, 마주보고 서서 나는 몰라에게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했습니다.
제가 말을 다하기가 무섭게 몰라는 내 소매를 낚아채며, 제게 “여기서 함부로 그런 말을 마시오.”라고 말하며 집밖으로 나를 쫓아 보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슬픔의 깊은 심연으로 떨여졌습니다. 낙심하고 상처받은 저는 스스로 ‘내 노력이 허사란 말인가? 누구를 의지해야 하나? 누구를 찾아가야 하지?... 하지만 이분을 다시 찾아가서 그분이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정도(正道)로 이끌어 줄때까지 참고 견디자. 옛말에도 구도자는 역경의 잔을 남김없이 마셔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아침 그 집의 대문으로 다시 가서 전날보다 더 세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번에도 몰라가 직접 나와서 문을 여는 순간, ‘진실을 전부 말해주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갈 겁니다.’라고 했지요. 그러나 몰라가 내 진심을 알아차렸습니다. 전날 그렇게 한 것은 염탐 온 사람이 아닌지 자신이나 친구를 해치려하지 않는지 확인해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아흐마드는 어느 모스크에 저녁 기도에 참석하라는 지침을 받는데, 그 사원에서 이 몰라가 대중 기도를 이끌었으며 그 뒤에 긴 설교를 하였다. 설교가 끝나면, 몰라를 따라오라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저녁 아흐마드는 기도와 설교가 끝난 다음, 몰라를 찾았지만, 몰라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몰라에게 다가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
다음날 몰라와 아흐마드가 다시 만나자, 아흐마드는 밤에 다른 모스크로 가서 제 3자를 만나면 그가 길을 안내할 것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따라 아흐마드는 일몰시에 회교 사원에 있으면서, 약속한 대로, 저녁 기도가 끝나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와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무런 주저나 두려움 없이, 아흐마드는 그를 따라 나섰다. 이제 세 명이 야심한 밤에 그림자처럼 비좁고 으슥한 골목을 걸어갔다. 아흐마드는 완전 낯선 사람이었지만,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달아나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리라 대결심을 하고 걸어갔으며, 어떤 결과가 닥치든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마침내 이들은 어떤 집에 당도했다. 문을 두드리자, 바로 문이 열려서, 세 사람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양옆이 가려진 길을 따라 들어가 작은 뜰에 도착했고, 몇 발자국 올라가자, 위층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고, 그곳에 매우 근엄해 보이는 분이 앉아있었다. 몰라가 그분께 겸손과 예경스런 마음으로 다가가서 공손하게 나직이 말했다. “이 젊은이가 제가 말씀드렸던 바로 그 젊은이입니다.”라고 아흐마드를 소개했고, 아흐마드는 문턱에서 공경스런 마음으로 많은 기대를 하면서 서있었다.
“어서 오시오. 여기 와서 앉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아흐마드는 그제야 방에 들어가 마루에 앉았다.
그 집 주인이 다름아닌 몰라 사디끄(진실한 자)였으며, 바압의 현시기 동안 초기 바비 중의 한사람이었으며, 박식함과 대범함과 신실함으로 매우 유명한 분이었다. 바하올라의 재세기 동안 몰라 사디끄는 열과 성을 다해 신앙에 충실했으므로 바하올라로부터 아스다끄(가장 진실한 자)라는 칭호를 하사받았다.
보석이 발견되다
아흐마드는 25년 동안 구도의 골짜기에서 방황했지만, 자신의 구도의 갈증을 해소시켜줄 단 한방울의 물도 어디서 찾지 못하다가, 이제야 시원한 샘물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타는 입술과 갈증으로 새로운 현시자이신 바압으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의 향기롭고 감미로운 샘물을 마셨다. 세 번의 만남으로 아흐마드에게 족했으며, 아흐마드는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대 환희심에 차있고 너무도 기쁘고 너무도 열정적이어서 아스다끄는 아흐마드에게 카산에 있는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했고, 바비 신앙에 대해 사람들에게, 심지어 아내에게도 입도 뻥긋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이 시기는 바비 신앙이 태동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라서 매우 위험천만인 때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비 신자가 된 경우에는 계속 온갖 적대적 행위와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의심과 염탐 및 비방으로 점철되었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나 어리석은 말을 하여 바비 신도들을 박해의 불길로 삼켜버릴 지옥불 같은 화마를 촉발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했다.
아스다끄는 아흐마드가 얼마나 힘겨운 나날을 보냈는지 알고 있었기에, 아마 귀향할 여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가족에게 줄 작은 선물을 마련해주고, 3 투만(약 천원)을 주면서,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당부했다. 카산으로의 귀향에 대해 말하면서, 아흐마드는 “제가 카산에 갔을 때, 만나는 사람마다 저에게 왜 그렇게 갑자기 다 버리고 떠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 ‘순례의 열정이 너무 벅차서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거짓 없는 사실입니다. 일도 집도 가족도 다 버리고 떠날 때 제 가슴 속 소망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그 나그네에게서 이 말을 듣자, 저는 인내심이 바닥났던 거지요.”
카산에서 아흐마드는 모직업에 다시 종사했지만, 바비 신앙을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아흐마드는 소문으로 하제 메르자 자네라는 사람이 개종을 했으며, 낯선 종교의 신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흐마드는 그를 찾아갔고,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감쌌다. 이들은 바로 절친한 친구사이가 되었으며, 카산에서 유일한 최초의 바비였다.
어느 날 하제 메르제는 아흐마드에게 가서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었다. “주님의 용안을 뵙고 싶으시오?” 이 말을 듣자 아흐마드의 가슴이 크게 박동했다. 너무도 황홀감에 빠져 자리를 바로 박차고 일어나 다그치듯 물었다. “어떻게 언제 말이요?” 하제는 아흐마드에게 안내원을 붙여서 바압을 자신의 집에 손님으로 사흘정도 머무르시게 준비를 해두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흐마드는 약속된 시간에 하제의 집으로 갔다. 아흐마드가 하제의 집에 들어가자, 그의 시선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미려한 용모를 하신 분께 향해졌다. 한 청년 세이예드가 매우 온유하고, 장엄하며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계신 것을 보고 그분의 얼굴에서 주님의 빛을 알아 뵙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을의 성직자들과 유지들이 그분의 주변를 둘러싸고 마루에 앉아 있었고, 하인들은 문에 서있었다.
몰라 중 한 분이 바압께 얼굴을 향하여 여쭈었다. “쉬라즈에 한 청년이 자신이 바압(門))이라고 주장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라고 바압께서 답하셨다. “그가 말씀을 계시하나요?”라고 그 몰라가 물었다. 바압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도 말씀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흐마드는 이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분명하고 담대한 답변만으로도 들을 귀가 있고 볼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진리의 전모를 파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분의 수려한 용안과 그분의 강렬한 말씀과 존재가 모든 것을 증거하고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이 차를 내오고 찻잔을 바압께 드리자, 바압께서는 바로 찻잔을 받아 그 몰라의 하인을 부르시고는 하인에게 차를 주셨습니다. 그 다음 날 그 하인이 제게 와서 매우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주인이 너무도 어리석다고 한탄하였습니다. 바압께서 어떤 분이신지 잠시 설명하자, 그 하인은 이내 바압을 영접하게 되었고, 바비의 수가 3명으로 늘었습니다.”
이 작은 핵이 성장하여 바비 신자의 수가 증가했다. 이로 인해 성직자들은 위협을 느끼고 이미 세차게 흐르고 있는 생명의 강물을 거스르려고 갖은 간교한 꾀를 다 동원했다. 성직자들은 무지하고 잔혹한 대중을 선동하여 바압을 영접한 모든 바비들을 약탈하고 재산을 몰수하고 살해하게 했다. 폭도들은 바비의 집에 가서 미친 듯이 문과 창문을 부수고, 집을 파괴하며, 가구와 살림살이를 약탈하였다. 저녁이 되자 대로와 골목길이 죽은 사람들의 시신으로 가득했고, 이웃 야산과 들판에 버려졌다. 이러한 잔혹행위가 계속되었으며, 아흐마드의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아흐마드는 40일 동안 탑에 숨어 지내야 했으며, 교우들이 그에게 먹거리를 가져다주곤 했다
평화의 거처로의 여행
카산에서 산다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차에 바그다드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가기로 결심했다.
"And God calleth to the Abode of Peace (Baghdad) and He guideth whom He will into the right way." [Qur’an 10:25]
“그리고 하느님께서 평화의 거처(바그다드)로 부르시고, 그분께서 원하는 자는 누구나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시나니.”
- 꼬란 10장 25절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아흐마드는 은신처에서 빠져나와 도시의 벽을 넘어서 바그다드로 향했다. 아흐마드는 하느님의 현시자의 용안을 알현하고자하는 열망과 사랑으로 벅찬 가슴을 안고, 도보 여행길에 올랐다. 도보 여행을 하는 도중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할 것 같아서 그 낯선 사람을 못 알아 본 척 하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 나그네는 계속해서 아흐마드의 여행길을 동행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의 목적도 알리지 않은 채로, 그들은 목적지인 바그다드에 도착했고, 바그다드에 당도한 즉시 이들은 서로 헤어졌으며, 아흐마드는 그 즉시 바하올라님의 저택을 찾아 나섰다. 그분의 집을 찾아서 들어가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그와 여행을 같이 했던 바로 그 낯선 나그네가 바하올라님의 집에 있었다. 그제야 아흐마드는 그 나그네도 바비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축복받은 아름다우신 주님의 어전으로 갔다.
바하올라님의 어전에 든 아흐마드
바하올라님을 알현한 것은 아흐마드와 같은 이에겐 너무나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아흐마드는 평생 하해와 같은 영성적 수원(水源)을 찾아 왔기 때문이었다. 영혼을 꿰뚫어보시는 권능을 지니신 수려하신 주님의 용안을 처음으로 뵙자, 아흐마드는 벅찬 마음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었다. 고래의 미이신 바하올라님께서 ‘바비가 되어 탑에 숨은 아흐마드구나.’라고 하시는 유쾌하신 말씀을 듣고 나서야 제정신이 차려졌다.
바하올라님께서는 아흐마드가 바그다드에 머물도록 허락하셨고, 그의 거주지를 그분의 저택 근처에 마련해주셨다. 아흐마드는 즉시 모직기계를 설치하였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다. 아흐마드가 그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하느님의 현시자의 시대에 살면서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으며 마음속으로 또 영적으로 심지어 거주지까지 사랑하는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아흐마드에게 바하올라님과 지척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복받은 나날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아흐마드는 “그 시절에 제가 누린 천복은 너무도 한량이 없고, 너무도 거대하고 너무도 강렬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기억에 남을 추억거리로 가득했습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픔도 겪었지만, 그 경험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각별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축복받은 아름다운 주님이신 바하올라님께서 산책하고 계실 때, 정부 관리 한사람이 주님께 다가와서, 주님의 신자 한 명이 살해당해서 강뚝에 그 시신이 버려졌다고 하자, 권능의 말씀이신 바하올라님께서 응답하시길, ‘아무도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수천 베일로 덮인 빛을 통해서 그에게 하느님의 영광을 바늘귀만큼 보여주자마자, 그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칼리프의 지령이 바하올라님께 전달되자, 주님께서는 바그다드를 떠나 이스탄불로 가야 했기에, 노루즈 후 32일째 되는 날에 마을을 떠나 레즈완 동산으로 가셨다. 바로 그날 강이 범람하여 9일째가 되어서야 성가(聖家)가 레즈완 동산에서 주님를 뵐 수 있었다. 그리고 강이 다시 범람했고, 제 12일째 강물이 줄어들어 모두가 주님께 갔다.
아흐마드는 바하올라님께 유배 시(時) 함께 가게 해달라고 간청 드렸지만, 바하올라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그분은 몇 명을 뽑으시고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남아서 대업을 가르치고 보호하라고 하시고, 이것이 하느님의 신앙에 더 좋을 것이라고 강조하셨다. 주님께서 출발하실 때, 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한 줄로 서서 복받치는 설움을 참지 못했다.
바하올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시 다가오셔서 달래듯 말씀하셨다. “이것이 대업을 위해 더 좋으니라. 나를 따라 가는 이들 중 몇 명은 안 좋은 일을 벌일 소지가 다분한 사람들이기에, 내가 직접 그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니라.” 신자들 중 한 명은 크나큰 고뇌와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주님께서는 대중에게 사디(페리시아의 유명한 시인)의 시(詩)를 읊으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 일어나
봄철의 뭇 구름처럼
흐느껴 우세.
연인들이
사랑하는 임과 헤어질 때,
바위도 너무나 슬퍼서
흐느껴 운다네.
그리고 바하올라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이 시는 바로 오늘을 두고 지어졌도다.” 그리고는 주님의 말에 올라타셨고, 신자 중 한 명이 안 장 앞에 동전이 담긴 포대를 놓자, 바하올라님께서는 옆에 대기하면서 구슬피 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동전을 나누어주셨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 분을 향해 달려갔을 때, 그들은 서로 밀쳤고, 주님께서는 포대에 손을 넣으시고 모든 동전을 쏟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이 동전을 모으라.”
아흐마드는 사랑하는 주님께서 미지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가시는 모습을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보았다. 아흐마드는 주님께서 권능과 힘의 정점을 향해 떠오르는 태양과 같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거의 몰랐다. 마음이 침통하고, 영혼이 완전히 풀이 죽어서, 아흐마드는 바그다드로 향했지만, 이제 바그다드는 그에게 동경에 대상이 더 이상 아니었다. 아흐마드는 교우들을 모아서 바하이 신앙을 퍼뜨리고 교도하도록 독려함으로써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애썼다. 대업에 능동적으로 봉사했지만, 마음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흐마드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사랑하는 주님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아흐마드 서한이 계시되다.
몇 년 후에 아흐마드는 다시 고향을 떠나, 주님이 계신 사랑과 소망의 도시인 안드리아노플까지 일하면서 걸어서 갔다.
아흐마드가 이스탄불에 도착했을 때, 아흐마드는 바하올라님으로부터 서한을 받았으며, 그 서한이 잘 알려진 ‘아흐마드의 서한’이었다. 아흐마드는 아흐마드의 서한을 받았을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낙원의 나이팅게일이신 바하올라님의 서한을 받아들고, 낭송하고 또 낭송하면서 알아차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주님께서 내가 대업을 교도하길 원하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뵙기보다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로 했습니다.”
아흐마드는 페르시아로 가서 옛날 바비들의 가족을 찾아서 그들에게 주님의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아흐마드의 서한에 바압에 대한 아름다운 말씀이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 당부한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고, 그래서 “그대는 나의 적에 대해서는 타오르는 불꽃이 되고 나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강물이 될지며 의심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고 하셨던 것이다. 아흐마드가 가야할 길은 피와 가시와 견뎌내야만 할 역경으로 가득하지만, “그리고 만약 그대가 나의 길에서 고통의 습격을 당하거나 나를 위하여 천대를 받을지라도 그대는 괴로워하지 말라. ”고 하시면서 가슴을 감동케 하는 승리를 약속하셨다.
“바하올라님께서 특별한 효험과 중요성을 부여한” 기도문을 부적처럼 소유하고 거지처럼 차려입고, 아흐마드는 다시 페르시아로 갔다. 아흐마드는 바압께서 감금되셨다가 순교당하신 곳에서 페르시아로 가서, 생명의 미풍처럼 페르시아를 가로질렀다. 그리하여 많은 바비들이 아드리아노플에서 찬연히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많은 이슬람교인들도 바하이 신앙을 전심으로 받아들였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복음”
아흐마드는 <아흐마드 서한>의 내용대로 살았다. 아흐마드와 같은 끈기와 불요불굴의 정신과 강직한 신심은 바하이 신앙의 연대기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아흐마드가 접촉 상대를 만나, 비록 “고난당하고 천대”받아도, 아흐마드는 다시 돌아와 토론하다 남은 것을 끝내곤 했다.
예를 들어 아흐마드가 크호라산 지방을 여행할 때, 유명한 바비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집의 가장이 다름 아닌 포로그헤로서 타바르세 전투의 생존자였다. 아흐마드가 그 집으로 들어가서 점점 종교 주제를 다루었으며, 하느님께서 현시되신 분이 바로 바하올라님으로써 그분의 빛이 아드리아노플이라는 ‘벽방의 감옥’ 지평선 위로 그 당시에 찬연히 빛나고 있다고 매우 직접적이고 힘차고 강한 어조로 설명했다.
타바르세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운 포로그헤는 여기서도 싸움을 시작했다. 논의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렬해지자, 포로그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흐마드를 공격했고, 아흐마드의 이를 부수고, 집 밖으로 쫓아내어 버렸다.
아흐마드는 크게 상심하여 떠났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서 대문을 두드리고, 중단된 주제를 충분히 다루고 어떤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는 한발 짝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그 당시의 바비들은 매우 위험천만인 상태에 처해서 누구의 집이든 바압의 성구가 적힌 종이가 하나라도 발각되면, 그 집은 분쇄당하고 식구들은 감옥으로 보내거나, 순교당했다. 그러므로 바비들은 경전을 집안의 벽에 숨겨놓았다. 아흐마드가 포로그헤의 집으로 토론하이 위하여 두 번째 갔을 때, 아흐마드는 최대의 명칭 바하가 모든 바압의 경전에 언급되었다고 강하게 말했다.
포로그헤는 이 말의 진리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흐마드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는 벽의 일부를 부수고, 바압의 경전이 모셔진 작은 보따리를 가지고 와서, 이 명확한 경전에 어긋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흐마드가 말했다. “우리가 펼쳐 본 바로 첫 번째 페이지가 바하의 이름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약속한 대로, 포로그헤와 가솔들은 바하올라님을 영접하고, 바하이 신앙의 선포와 보호에 있어서 열정적이고 뛰어나 옹호자가 되었다.
“타오르는 불꽃”
크호라산 지역을 모두 횡단한 다음에, 아흐마드는 다시 바그다드라는 중요한 도시에서 모든 교우들에게 바하올라님을 대신하여 사랑의 메시지와 인사말씀을 전하러 갔지만, 불행히도 가는 길에 병에 걸려서 바그다드에 도착하지 못했다. 게다가 테헤란에서, 카산의 일부 성직자들이 아흐마드를 알아보고, 왕의 어전에서 그를 맹렬하게 비난했고, 왕은 바하이 신앙의 신자들에게 박해를 가할 준비가 되었다. 곧 아흐마드는 체포되어 젊은 관리에게 위임되었으며, 그 관리는 그 사건의 책임을 맡고 조사하도록 명령받았으며, 그는 아흐마드가 사이비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가차없이 사형에 처하라고 했다.
그 젊은 관리는 아흐마드를 박해하고 싶어하지 않았기에, 아흐마드에게 신앙을 버리라고 종용했다. 아흐마드는 말했다. “그 당시에 나는 내 신앙과 열정의 정점에 도달하여 잠시라도 신앙을 저버린다는 생각을 손톱만큼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하이 대업의 길에서 언제든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된 아흐마드는 너무도 자기희생정신이 강했는데, 자신은 바비가 아니라, 최고의 현시자이신 바하올라님을 따르는 바하이라고 주장했다. 아흐마드가 감옥에 갇히자, 그 젊은 관리의 아내가 갑자기 영문도 모를 병에 걸리게 되었다. 두렵고 고뇌에 찬 나머지, 그 젊은 관리는 아흐마드에게 “제 아내가 회복되면, 당신을 풀어주겠소.”라고 말했으며, 3일 뒤에 이 젊은 관리는 자신에게 닥칠 가혹한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아흐마드는 테헤란의 문으로 데리고 가서 석방시켰다.
“영원한 생명의 강물”
새장에서 풀려난 새처럼 자유로운 몸이 된 아흐마드는 바비들이 사는 마을로 갔다. 바비들은 아흐마드를 진심으로 대하고 예의를 갖추었다. 바비들은 아흐마드를 후하게 대접했고, 아흐마드는 그들을 하느님의 정도(正道)로 인도했고, 크게 기쁜 마음으로 아흐마드는 그 마을을 떠나 쉬라즈가 수도인 파르스 지방으로 갔다.
약 25년간 아흐마드는 이 지방에서 살았으며, 박해받고 핍박 받는 이들을 꾸준히 보살피는 벗이 되었다. 박해 기간 동안에 이들을 위로하고 승리와 환희의 드넓은 지평선이 펼쳐질 것이라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했다.
페르시아의 이 지방의 노인들을 통해서 겸손한 종이자 작가인 이 몸은 마을 사람 중에 훌륭한 성직자가 있어서 멀리서 그의 메아리를 듣게 되었으며, 저는 보호와 인도와 자비의 천사라는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 저는 구도를 시작하여, 그 분이 바로 소중한 아흐마드로서 전 세계 바하이들에게 사랑과 예경심으로 알려진 아흐마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흐마드는 페르시아의 이 지방으로 지나가는 많은 여행 교도자들을 영접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거처를 내어주고 연회를 베풀며, 하느님과 그분의 신앙에 대해 말하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린 그 당시의 많은 교도자들의 경험을 상세히 설명했다.
아흐마드가 전하는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옷도 제대로 못 차려입고 맨발로 다니는 어떤 사람이 우리 집 문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매우 지치고 쇠약했습니다. 그의 옷은 뻣뻣하고 갈색이었으며 먼지와 땀이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부님에 의해 ”칼멜산의 천사“라는 칭호를 받은 하지 메르자 헤이다르 알리였습니다. 나는 그가 옷을 벗도록 도와주고, 그가 쉬면서 교우들이 모이에 참석하려오길 기다리는 동안, 옷을 세탁하여 햇볕에 말렸습니다.”
“나의 사랑 안에 확고부동하여”
다사다난한 일들로 가득 찬 여러 해가 지났지만, 박해의 물결이 페르시아 전역을 뒤덮었을 때, 아흐마드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깊은 교우들은 아흐마드를 큰 타격으로부터 구하려고 노력했으며, 오랜 시간의 상의 끝에, 쓸쓸하고 외로운 이 지방을 떠나 보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라고 아흐마드에게 제안했다.
아흐마드가 가는 곳마다, 교우들은 아흐마드에게 동일한 제안을 했다. 아흐마드는 페르시아의 전역에 너무도 잘 알려져서,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고집불통인 이슬람교도들에게 동요를 일으킬 것이 확실하며 그로 인해 아흐마드가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아흐마드는 결코 동요하지 않았으며 “적에게 타오르는 불꽃”이 되고, “연인에게 생명의 강물”이 되었다. 건강한 상태에서 100년을 장수한 다음에 테헤란에서 1905년에 사랑하는 임의 곁으로 떠났다.
아흐마드는 자녀로 미르자 모함마드라는 아들과 카눔 고하르라는 딸이 있었다. 아흐마드의 집이 몰수당했을 때, 아들과 며느리와 그 자녀들은 카산시를 떠나 테헤란으로 향했다. 미르자 모함마드와 아내와 딸은 테헤란으로 가는 길에 사망했다. 그들의 묘지의 흔적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이제 다섯 살 난 아들인 자말만 남았다. 여러 지방에서 테헤란으로 음식을 운반하던 노새 몰이꾼은 자말이 바비의 아들인지 모르고, 외로운 고아인 아이에게 동정심을 느끼고 짐에 올려태워서 테헤란으로 데리고 왔다. 이 거대한 수도에서 가엾은 자말은 홀로 남게 되었고, 아무도 자신이 바하이 신앙의 영웅적인 선조를 가지고, 온갖 역경과 말 못할 환난을 이겨낸 위대한 계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아이는 이 상태로 버려져 있다가 숙모인 카눔 고르가 테헤란을 방문했다.
아흐마드가 수도에 도착했을 때, 아흐마드가 너무도 사랑하는 자신의 손주 이야기를 들었다. 아흐마드는 그 손자를 직접 양육하여 위대한 바하이로 성장했다. 자말은 인물됨이 강철 같은 의지력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강했다. 아무것도 자말을 하느님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게 할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록 그 길이 항상 좁고 가시와 피와 말 못할 수많은 곤경과 재난으로 가득할 지라도...
아흐마드는 임종 직전에 원본 아흐마드 서한을 손자인 자말에게 맡겼고, 차례로 자말은 순수한 마음과 하느님의 신앙에 대한 예경심으로 성업선양자이자, 호꾸 담당자이며, 훌륭한 두명의 순교자의 형제인 지나베 발리욜라 바르까에게 헌정했다. 지나베 바르까가 수호자님의 지시에 따라 1953년 대륙간 협의회 기간에 윌멧트의 바하이 사원의 백주년 개헌식에 참여했을 때, 지나베 바르까는 아흐마드의 서한을 미국 바하이들의 문서보관소에 헌정했다. 이제 미국의 사랑하는 교우들이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위대한 선물을 지키는 보호자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카눔 구하르는 아흐마드의 자랑스런 딸로서 매우 활동적인 바하이였다. 그녀에 대한 간략한 무용담은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었다. 그녀의 거울같이 맑은 마음씨에 대한 이야기는 좀처럼 찾기 드물다. 예를 들어서, 바하올라님의 재세기에 교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훌륭한 교도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한명은 주님의 서한으로 너무도 칭찬을 많이 받은 바하이인데, 카눔 고하르의 집으로 갔고, 그녀는 그 바하이를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신발을 닦아주었다. 그러한 명칭과 높은 존경심은 무리 중 몇 명의 머리를 돌게 만든 것 같다.
그들은 바하이 신앙에서 독립적인 계급을 떠맡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명이 바하올라님의 승천 후에 카눔 고하르의 집으로 갔다. 카눔 고하르가 다과를 내어 와서 최대의 존경심으로 손을 포개고 문에 섰더니, 그 바하이가 다과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우울해보였고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카눔 고하르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성지로 가야겠어요. 내가 직접 바하이 신앙의 일을 처리해야 겠어요. 바하이 신앙이 일개 청년의 손에 맡겨져 있으니...” 그는 마지막 문장을 분개심과 교만심으로 가득차서 입밖으로 내었다.
이 말을 들은 카눔 고하르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선생님 생각에 바하올라님께서 사후에 누구를 임명할지 몰랐다는 말씀인지요?” 그리고 나서 카눔 고하르는 방으로 들어가서 다과를 맏은 쟁반을 들고는 매우 단호한 어조로 거만하고 오만한 사람에게 얼른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런 다음 이웃 바하이 가족에게 최대의 가지이신 분의 하명이 있기 전에는 그 자를 조심하라고 말했다. 또 그녀의 순수한 마음씨를 나타내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바하이 가족인 어느 어린 소녀가 중병에 걸려 침상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카눔 고하르는 침상으로 가서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저는 살만큼 살았으니, 원컨대 저를 데려가시고, 이 어린 숙녀가 부모곁에 더 있게 하소서.” 바로 그날 밤에 그녀는 소천하고 어린 환자는 완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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